《고구려 정권에 대한 중원 왕조의 책봉을 시론함》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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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정권에 대한 중원 왕조의 책봉을 시론함》에 대한 반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본 개념 : 중국 한(漢)나라 이래 중국의 전통적 이민족 지배방식. 한대 이래 중국의 이민족 국가에 대한 지배방식 중 하나인 책봉은 중국의 황제가 주변국가의 군장(君長)에게 특정한 관작(官爵)과 이에 상응하는 물품을 줌으로써 그의 자격과 지위를 부여하고 공인하여 신하로 복속시키는 양식이다. 즉 책봉은 중국이 주변제국의 군장에게 각각의 세력원에 대한 통치를 위임함으로써 그를 대표로 하는 외이(外夷) 집단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려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책봉은 중외국관계의 한 유형이며, 중국적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제도적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책봉관계는 주변국이 책봉을 요청하고, 중국이 책봉함으로써 성립된다. 주변제국이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조공이 선행되어야 한다
I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주요한 근거 중 한가지는 고구려가 중국의 책봉을 받았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민족정권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의 책봉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봉을 받는다고 해서 곧 변방민족정권(지방정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에 정면으로 상치(相馳)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규명하기에 앞서, 동양과 서양의 외교가 서로 판이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 외교는 서양식 외교다. 30년 전쟁(1618∼1648)과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 이후에 성립된 서양식 외교가 19세기 말 동양에 전파되어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외교가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이전의 동양 외교를 인식할 때에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서양식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서양식 외교에서는 모든 국가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크건 작건 간에 모두 똑같은 주권 국가로 대우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UN에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게 거부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EU 이사회의 경우에는 중요 사안에 관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게는 10표를, 기타 국가들에게는 각각 8표·5표·4표·3표·2표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식 외교는 형식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차등적인 것이다.
반면, 과거 동양의 외교는 이와 달랐다. 외교 형식에 국력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개인 간의 신분적 차별이 존재했던 것처럼, 과거 동양에서는 국가간 차별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래서 강대국은 강대국으로, 약소국은 약소국으로 대우했다. 강대국을 강대국으로 대우하는 것을 사대(事大)라 했고, 약소국을 약소국으로 대우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자소(字小), 한국에서는 교린(交隣)이라 했다. 어차피 차등적인 것은 다 마찬가지였지만, 서양에서는 실질적으로 차등적이었던 데 반해, 동양에서는 형식적으로도 차등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형식적 차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책봉(冊封)이었다. 책봉이라 함은, 강대국 군주가 약소국 군주를 특정 관직에 봉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일반인들은 책봉을 받으면 종속국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 책봉의 실태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동아시아 국제 질서는 본질적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고구려 시대(중국 측은 남북조 시대)에 중점을 두되, 한나라∼청나라 시기를 전반적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1. 책봉은 군주의 임명 요건이 아니었다. 이 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서양국제법상의 국가 원수 승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혁명이나 쿠데타에 의해 새로운 국가 원수가 취임하면, 타국은 그를 국가 원수로 승인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 원수는 혁명이나 쿠데타 후의 국내 절차에 의해 통치자가 되는 것이지 타국의 승인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국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타국에 대해 자국을 대표하고 타국과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책봉 역시 이와 유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중국의 책봉을 받는 고구려 군주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군주가 된 것은 국내 절차에 의한 것이지 중국의 책봉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책봉을 받음으로써 중국에 대해 자신이 고구려 군주임을 주장할 수 있고 중국과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장수왕의 경우를 보자. 장수왕은 413년 동진(東晋)으로부터 정동장군으로, 420년 남송(南宋)으로부터 정동대장군으로, 435년 북위(北魏)로부터 정동장군으로, 463년 남송으로부터 거기대장군으로, 479년 남제(南齊)로부터 표기대장군으로 책봉 받았다. 그런데 책봉은 장수왕의 임명 조건이 아니었다. 단지 장수왕을 고구려왕으로 인정하고 고구려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중국 측의 의사 표시에 불과했다. 그가 책봉을 받은 것은 중국 왕조와 관계를 개설하거나 혹은 강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