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설화와 서정주의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의 상호 텍스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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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만파식적 설화와 서정주의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의 상호 텍스트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전이 재창조되는 이유는 고전에 담긴 명확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뜻이란 보편적 진리, 깨우침, 역사적 사건, 역사적 의미 등이 될 수 있겠다.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그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에는 ‘고전’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그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고전’이 되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대부분의 고소설, 민담 등의 전승문학은 환상적인 부분을 제거하면 이야기의 논리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환상성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승문학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환상성은 문학의 정당한 소재이자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만파식적이란 피리도 단순히 신비한 능력을 가져서 설화의 소제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파식적은 어떤 뜻을 담고 있고 그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현대시로 계승되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만파식적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인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알아보고, 어떻게 서정주 시인이 만파식적 설화를 계승했는지 분석해 보았다.
Ⅱ. 고전 문학 작품(원텍스트)에 대한 분석
만파식적 설화에는 신라시대 신문왕과 그의 아버지 문무왕이 나오는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가 만들어진 설화이다. 해관 파진찬 박숙청의 아룀과 일관 김춘일의 점을 듣고 왕이 행차하여 어떤 산을 바라보면서 사자를 보내 살펴보도록 했더니, 산의 형세는 거북의 머리 같고, 그 위에는 한 줄기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이튿날에 대나무가 합하여 하나가 되고, 천지가 진동하며 비바람이 몰아쳐 7일 동안이나 어두웠다. 수 일이 지나고 나서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평온해져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가보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바쳐서 신문왕이 그 대나무의 정체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용이 대나무라는 물건은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난다며 신문왕이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좋은 징조라고 하였다. 또 신문왕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문무왕과 김유신 두 성인이 같은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신문왕이 기뻐서 오색 비단과 금과 옥으로 보답하고 대나무를 베어서 바다에서 나오자, 산과 용은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서 유숙하고, 후에 기림사에 있는데 태자 이공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달려와서 옥대의 여러 쪽들이 모두 진짜 용이라 하였다. 쪽 하나를 떼어서 물에 넣어보면 알 수 있다며 왼쪽의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곳이 연못이 되었다. 이로 인해 그 못을 용연으로 불렀다. 신문왕이 행차에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천존사에 간직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의 군사가 후퇴하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는 물러가며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이 피리를 ‘만파식적’으로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문무왕과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성인으로서 사후에도 신라를 위해 고심한다. 문무왕이 호국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은 유골을 바다에 안치하라는 유언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김유신 장군이 등장한다. 삼한 통합을 이미 문무왕대에 이루었고, 문무왕은 임종할 때 호국대룡이 되겠다고 하였는데, 그는 왜적의 침입을 막으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란을 방지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사나운 용이 되어 위협을 가하겠지만 국내의 반란으로부터 국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화와 통합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조화를 강조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판단된다. 통일된 신라에서 신문왕이 할 일은 통일을 이룬 선왕의 위업을 널리 알려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죽은 김유신이 나온다. 신문왕 즉위가 신사년(681) 7월인데, 8월에 김흠돌의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듬해 5월에 만파식적의 일이 있다. 결국 김흠돌의 난을 제압하고 사회적 안정을 취하기 위해 만파식적과 같은 사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만파식적이라는 악기는 통합을 위한 상징적 장치라고 확신할 수 있다.
Ⅲ. 현대 문학 작품(재창조 텍스트)에 대한 분석
신문대왕 : 죽어서도 이 나라를 길이 지켜 내자면 챙피치만 비늘 돋힌 용이라도 돼야겠다. 내 죽으면 바다에서 하늘까지 뻗히는 호국용이 될 것이니 바다 속에 묻어 놔라. 내 아버님 문무대왕 말씀하신 꼭 그대로 바다에 묻은 지도 많은 해가 바뀌어서 학 두루미도 여러 직을 새끼들을 까놧는데 바다에선 여직까지 새 기별이 안 오느냐? 아니라면 우리 눈이 흐려지고 만 것이냐?
해군제독 박숙청 : 저기 저기 바다 쪽을 살피어 보옵소서. 제 눈에는 분명하게 동해의 섬 하나가 더는 이상 못 참겠다 몸부림을 쳐대면서 문무황제 폐하의 감은사를 향하여 유유히 떠오는 게 아주 잘 보이나이다. 돌아오는 어선처럼 희희낙낙 오는 것이 거울 같은 마음 눈에 비쳐 보이나이다.
신문대왕 : 하늘의 일 땅의 일과 이승 저승 모든 일을 누구보다 잘 본다는 일관아 나오너라. 그대 맑은 만리안엔 무에 시방 보이는고?
참고문헌
참고자료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네이버 백과사전 ‘만파식적’
박진태, 만파식적설화의 서사구조와 역사적 의미, 한국어교육학회, 2008년
네이버 지식백과 : 만파식적
삼국유사 제 2권 『만파식적』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8, p,119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4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1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3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5, p.116
서정주,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 소설문학사, 1982년,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