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상 레포트 - 르네상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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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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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예술과 사상 리포트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에 대한 전반적 설명*
15∼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미술. 오늘날 통념적인 르네상스 미술의 시기는 피렌체대성당의 돔(dome)을 착공한 1420년을 상한(上限)으로 하고, 하한(下限)은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로 옮겨가는 1525∼30년경으로 잡고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그의 저서 《치체로네》(1855)에서 이탈리아인미술가열전의 저자 바사리를 비롯하여 이른2바 트리엔토를 절단하여 15세기 및 16세기만을 르네상스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나중에 14세기에 전기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르네상스는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을 정점으로 이르렀던 미술 경향이다.19세기 이후, 15∼16세기에 유럽의 문화현상을 널리 파악하는 개념이 된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을 뜻하는데, 이 말의 어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서 미술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재탄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고전 학문의 부활을 기술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슐레가 프랑스 역사의 한 절에 르네상스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르네상스가 특정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되었다. 인간 정신의 회복을 바탕으로 신앙 위주의 미술에서 인간 위주의 미술로 변화하고자 했으며, 초자연적인 중세 미술에 반대하여 인간과 자연의 현세적인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실적인 미술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전반에 전성기였다. 중세의 기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과 개성의 해방 및 존중, 자연인의 발견 등에 중점을 두었다.
미술사의 통설로는 1420년 건축가 F.브루넬레스코가 고대연구의 성과를 최초로 실현한 피렌체 대성당의 원개(圓蓋;돔) 공사가 기공된 무렵부터 1520∼30년경에 고전적 미술이 마니에리슴으로 이행한 연대까지의 이탈리아미술에 한정시켜 좁은 범위에 사용한다. 그런 경우 특히 1500년을 경계로 1400년대를 전기르네상스, 1500년대를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한다. 르네상스라고 하는 프랑스어는 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rinascita)에서 유래한다. 14세기의 시인 F.페트라르카와 G.보카치오 등이 사라져가는 고대예술을 그들의 새 세대로 되실리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한 이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적 역사만으로 계승되고 있다.
15세기의 미술가 L.기베르티와 건축가 L.B.알베르티, A.P.A.필라레테 등의 저서에서 이것을 볼 수가 있다.다시 15세기 이탈리아의 미술가 기베르티와 알베르티, 필라레테 등의 저술에도 그러한 사관(史觀)이 계승되어 있었으나, 특히 16세기의 미술가 G.바사리는 그의 《미술가 열전(美術家列傳, 1550)》에서 여러 차례 리나시타라는 말을 사용하여 고 서술했다. 더구나 이 고대의 재생이 고전 연구와 자연모방에 입각한 자연주의의 추진에 의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일찍이 19세기의 J.미슐레와 J.C.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를 의 시대라고 말한 이후, 르네상스는 단순한 고대의 재생일 뿐만 아니라 중세와 결별한, 오히려 새로운 인간상과 세계관의 도래를 알리는 빛나는 문화사적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르네상스는 중세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유럽문화 전체를 휩쓴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카롤링거왕조와 12세기의 문화에도 르네상스가 거론되어 복잡하고 많은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바사리가 본 것처럼 르네상스는 본래 이탈리아의 미술풍토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역사적 인식과 예술의지에서 생겨난 미술현상(美術現象)을 계기로 하여 형성된 개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세의 인간구원에 대한 강한 열망에서 그리스도교가 자리잡고 있었던 시대의 모든 미술이 창작은 종교에 묶인 채 그 나래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생각이 확대되어 나가는 시대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였다. 급속한 기술과 발달은 인간의 시각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영향받은 것은 단지 사회에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미술에 있어서도 둣치오, 지옷토, 로렌쳇티 형제와 같은 화가들에 의한 시각 예술의 융성, 단테와 페트라르카, 복카치오와 같은 문학가들에 의한 문학 등의 발전 등과 같은 전반적인 문화의 융성이 꾀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있어서 자신들의 세기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여명기이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자아에 대한 보다 진보적인 노력들이 연결되었다. 위와 같이 신에게로 쏠렸던 시선이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지게 되자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각이 도래하게 되는 데 이가 바로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는 대규모적인 고대 문예의 부흥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고대문예의 부흥은 특히 시각예술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그리스도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대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따른 것이 아닌, 고전적 전통을 그리스도교와 융합시켜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하던 사람들이었다.
동서 중개 무역에 의한 상공시민세력의 대두로 새로운 의식이 싹튼 것이 사상적 배경이다. 예술적으로는 의식적으로 고전적인 모범을 모방하려하거나, 고전적 가치 기준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것은 고전 라틴 양식의 모방과 모든 고전적인 유물에 대한 무한한 찬양을 의미한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 등이다. 특별히 지옷토와 단테의 출생지였던 부유한 상업도시 피렌체에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피렌테는 새로운 아테네로 부상될 만큼 시민예술의 야심찬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예술가를 엘리트 집단으로 인정하는 등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조토가 재생을 예고한 새 시대의 예술이 명확하게 그 골격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의 피렌체였다. 이 도시는 정치적·경제적 번영을 배경으로, 인문주의 사조(思潮)를 기르고, 인간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했다. 미술가들은 조합을 만들고 공방(工房)을 거점으로 고전작품의 연구와 사실적인 자연탐구를 추진해 나갔다.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높은 관심과 공사(公私)에 이르는 왕성한 주문에 따라 건축·조각·회화 등 모든 조형분야가 서로 호응하면서 활성화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인은 고대의 가장 정통적인 계승자라는 자각 아래 타국민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대에 대한 동경과 향수에 빠져서 조상의 위업을 회상하는 민족적 자부심과 그 위업을 재현할 후예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 운동을 펴나갔다. 물론 고전 고대의 부흥이라는 현상이 중세에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9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고대 부흥이나 12세기의 프로트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현상은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레노바티오(renovatio:라틴) 또는 리내슨스(renascence:영국) 등으로 불리는 이러한 고대회귀현상(古代回歸現象)이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비록 명확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고대를 자기 자신과 역사적으로 연속한 것으로서 파악한 데 대하여, 이탈리아의 그것은 고대를 먼 과거에 잃어버린 유산으로 파악한, 역사적 이념을 통하여 보았다는 점이다. 즉, 당시의 이탈리아인은 자기 자신과 고대인 사이에 ‘1,000년의 암흑시대’라는 개념을 삽입함으로써 고전 고대의 세계를 머나먼 과거로 보고 취급한 점이며, 이와 같은 르네상스의 인식은 당연한 귀결로 부정적인 중세개념을 잉태케 하였다. 그런데 이미 14세기 말의 화가 치에니니는 그의 《예술의 서》(1400년경)에 조토의 회화활동 가운데 그 때까지도 없었던 자연탐구에 의한 새로운 풍조와 고대의 재흥(再興)을 인정하였다.
미술은 과학의 차원으로 간주되었으며 자연을 탐구하는 수단인 동시에 발견의 기록이었다. 따라서 미술은 발견의 원칙에 따랐으며 원근법 등 수학의 원칙에 따랐다. 이 자연탐구에 의한 사실(寫實)과 앞에서 든 고대연구를 2개의 큰 기둥으로 삼아 극히 이지적(理知的)·논리적으로 추진해나간 르네상스 미술은 우선 정치·경제의 근대화에 따라 시민의식이 왕성한 피렌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그 후 이탈리아 각 도시로 파급되었고, 다시 16세기 이후에는 알프스 이북의 여러 국가에까지 퍼져나갔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미술의 싹은 이미 13세기 후반~14세기 초에 화가 치마부에와 조토, 카발리니, 조각가 피사노와 캄비오 등의 활동으로 명확하게 인정된다. 이것이 조기(早期) 르네상스이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그 후 국제적인 북방 고딕 양식으로 단절되었으며 그것을 극복하여 참다운 르네상스 미술로서 의식상으로나 양식으로나 본격적인 개화를 본 것은 1420년대부터이다. 이것은 피렌체 출생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조각가 도나텔로, 화가 마사치오 등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초기 르네상스의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