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개념과 성립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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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개념과 성립 과정
한국사교육연습 양반의 개념
兩班이란 용어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관직제도상 文班(東班)과 武班(西班)을 지칭하는 개념이요, 다른 하나는 고려조선시대의 지배신분층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중 관직제도상의 문무반을 지칭하는 개념이 양반개념의 시원이었으며 이는 국왕의 조회를 받을 때 문신들은 동쪽에서 동반 또는 문반, 무신들은 서쪽에 서게 되어있어 서반 또는 무반이라 하여 이 두 반열을 통칭하여 양반이라 하였다. 이러한 관직제도상의 문무반이라는 의미의 양반개념은 이미 관료체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 초기부터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건국초기부터 완벽한 양반관료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고려 말까지 문무반의 불균형, 즉 무반에 대한 문반의 우위는 유지되고 있었고 무산계와 무과는 실시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불균형한 고려의 문무 양반체제는 조선 초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균형을 찾게 되었다. 공양왕 원년(1390)에 무과가 실시되고 태조 원년(1392)에 새로운 조선의 문무산계가 재정되어 실시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문무 양반체제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또 세종 18년(1436)에 이르러 태조 원년 제정된 무산계에서 빠졌던 정종9품계가 보완되었다. 이로써 조선조 양반체제의 제도적 기반이 되는 문무산계가 확정되었고 관직제도상의 문무반이라는 의미의 양반개념도 확고한 제도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동반서반 이외에 남반이라는 반열이 있었는데 조회에서 남쪽에서는 반열로 왕명출납궁중당직 등을 담당하는 국왕 측근의 내료직이었다. 이 남반은 양반관료 체제가 정비되어 감에 따라 동서반에 눌러 점차 7품 이하의 천직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독립된 반열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런 고려시대의 동서남3반은 조선시대의 양반으로 정립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직제도상의 개념으로 쓰인 양반이라는 용어가 양반관료 체제가 정비되어 감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가문까지도 양반으로 불리게 되었다. 즉, 양반이 신분개념으로까지 확대되어 사용된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구성과 공동체적 친족관계에 있던 가족과 가문은 공동운명체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어 차지한 관직은 음직과 과거를 통해 이를 世傳(세전)하려고 노력하였고 국가도 이들을 藩屛(번병)으로 삼기 위해 이를 어느 정도 보장해 주고 있었다. 이는 이들 가문간의 폐쇄적인 혼인관계로 더욱 공고해져 관직제도상의 문무반이라는 양반의 개념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최고 지배신분층을 가리키는 신분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양반의 성립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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