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작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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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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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석훈 작가에 대하여
서론
2002년 8월 14일, 여러 가지 민족문학 단체에서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날 공개된 친일 문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천명, 채만식, 최남선, 서정주 등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던 이름이지만 정인택, 박영희, 그리고 우리가 조사하게 된 이석훈 등이다.
이광수나 서정주 등의 유명작가들은 당시 친일에 대한 시비도 물론 있었지만 그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문학교과서에도 공공연히 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석훈은 일찍부터 친일작가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 작가의 작품까지 모두 묵과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지금의 경우에도 다른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에 비해 이석훈은 문헌이나 자료를 찾기 쉽지 않다. 또한 조원들 모두가 ‘문학과 사회’ 수업을 통해서 이석훈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생소한 작가로 구분된다.
우리는 작가 이석훈의 성장과정이나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작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그의 작품 을 비롯하여 일제 말기를 전후로 한 그의 작품세계와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언제부터, 어떻게 친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기로 하였다. 또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설 속에 본인의 친일 사상을 반영해놓았는지를 알고, 그것을 통하여 그가 어떠한 계기로 일제에 직접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는가, 또 어떤 방법으로 협력했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려 한다.
본론
1. 작가소개
이석훈(李石薰) :
소설가로서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이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 노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대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 등 신문사 기자를 지냈고, 경성방송국, 평양방송국 등의 방송사에서 근무했다. 한국 방송사의 초창기에 활동한 아나운서 중 한 명이다. 잡지사인 개벽사가 발행하던 월간지 《제1선》 편집자도 지냈다.
193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를 당선시키며 등단하였고, 1933년 [신동아(新東亞)]지에 , 등을 발표했다.
또한, 1933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 동인으로 가담하여 신극운동에 참가하고 극단 문예좌를 조직하는 등 연극 운동에도 참여했다. 1936년에는 문예지 《낙랑문고》를 창간해 발행했다. 1930년대 초반 안회남의 소개로 소설가 김유정을 알게 되어 문단에 데뷔하도록 한 뒤 각별히 가깝게 지낸 일화가 알려져 있다.
1939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조광], [여성] 등을 편집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친일 작품을 창작하고 〈성지참배통신〉(1942)과 같은 친일 기행문 등 많은 친일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소설 3편, 소설집 1권을 포함하여 총 친일 작품 수는 19편으로 적지 않은 쪽이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들어 있다. 1944년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선일보》에 합류했다. 당시 만선일보에는 염상섭, 안수길, 박팔양 등 유명 작가들이 근무하면서 일명 만주문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듬해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귀국하여 러시아 문학 작품 번역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중 1948년 대한민국 해군에 중위로 입대하였고, 해군본부 초대 정훈감 서리를 지내다가 1950년 제대했다. 제대한 직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는데, 그해 7월경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서울형무소에 수감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적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