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坡김상용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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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月坡 김상용론
1. 작가의 생애
월파 김상용(1902~1951)은 1902년 8월 27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아버지 경주 김씨 기환과 어머니 나주 정씨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은 그 지방의 한의사로서 한약상을 경영하는 한편 일만여평의 농지를 소유한 지주였다. 1908년 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비로소 부친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게 되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 이유로 제적당한 이후 연천으로 피신하여 결혼, 1921년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22년 입교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1927년 졸업 후 이화여전의 교수로 재직하게 되며 1930년부터 , , , 등을 발표함. 1939년 시집 을 간행한다. 1943년 태평양 전쟁 발발로 인해 교수직에서 물러나 동료 김신실과 함께 화원을 경영하기도 함. 해방 후 강원도 지사로 발령나기도 했다. 625 전쟁때 지하에 숨어있다 928수복과 함께 김활란의 도움으로 코리아타임즈 사장이 되기도 했다. 1951년에 게를 먹고 식중독에 걸렸으나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인해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상용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번역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번역의 대상은 워즈워드, 바이런, 테니슨과 같은 영국 낭만파 시인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창작한 시들도 이러한 특색을 보이는 것이 많다. 그 외에 1950년에는 라는 산문집을 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많이 썼던 시인이었다.
2. 작가의 경향
1) 초기(습작기)
① 4행시
월파의 4행시로는 1926년 와 1930년 가 있다. 전자의 내용은 ‘숭고한 의지’와 ‘굿굿한 육체’로 전선에서 싸우자는 것이고, 후자는 ‘한자락 풍우’뒤에 씻길 듯한 그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해 있었던 암울한 시대상황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시조
시조로는 과 에서 비롯한다. 은 193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가는 봄의 아쉬움을 노래했으며 감상과 낭만이 그 정서를 이루고 있다. 는 193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백두산 주변의 사적을 소재로 하여 고국산하의 아름다운 정취를 읊조린 것이다. 월파의 시조는 후기까지고 간간이 나타나고 있다.
③ 민요
월파는 그 초기에 시조와 민요의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실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민요조의 형성요인은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과의 두 요소의 상관선상에서 고려될 성질의 것이다. , , , 등의 민요조의 시가 있다. 이러한 민요조의 시들은 고유한 정형률 의식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영국 낭만파 계열의 역시에서 볼 수 있는 운율의식과도 깊이 연관되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