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상층여성들의 삶-도덕적 모델로서의 상층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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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상층여성들의 삶-도덕적 모델로서의 상층여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가)열녀

나)궁녀

(다)양반층 가문의 여성

본문내용
1.열녀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었을 때, 수절한 여자를 모두 열녀라고 했으나 조선시대에는 남편이 죽으면 재혼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여 1485년(성종 16)에는 《경국대전》에 재가부녀(再嫁婦女)와 서얼의 자손은 벼슬길을 막는다는 조항을 넣었고 중종 때는 개가 자체를 범죄시하였기 때문에 수절한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남편을 따라죽거나 지극한 정성을 보이며 수절한 여인들만을 열녀라 칭하였다.
2.교육기능
유교사상중 중요한 것이 충과 효와 열이라고 할 수 있다. 열이란 것은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인데 유교의 수용은 고려시대까지 평등했던 남녀관계를 불평등한 관계로 만드는 것이기에 국가에서는 열녀비나 열녀각 같은 것을 내려 여성들을 치하함으로써 유교의 수용을 원활케 하고자 했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열녀’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유교적 모범이 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3. 교육대상
열녀의 사상이 전파된 것은 일반평민들이었다. 향낭고사와 같은 자료를 살펴보면 법에는 평민들의 개가가 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가에 대한 인식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평민계급에도 열의 개념이 뿌리 깊게 박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전기에는 사대부 가문의 열녀가 주로 나왔지만, 후기로 가면 갈수록 일반 평민 쪽에서도 열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