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
분야
hwp추상적 경험주의
추상적 경험주의는 통계적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여론’에 대한 연구에서 드러나듯 구조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현대의 ‘대중화’된 공중의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추상적 경험주의자들은 계급이나 계층 연구에 대해서도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에서 이용되었던 주요개념들 대신에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불분명한 지표를 사용하며 소도시 표본연구에 한정하여 체계적 구조에 해당하는 문제를 검토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은 ‘방법적론 금기’에 사로잡혀 구조의 문제를 해명하지 못한 채 세부사항들을 쌓기만 하였다.
추상적 경험주의의 특징은 대규모 행정기구와 훈련된 지식인 종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보다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과학철학에서 지적 정당화를 찾는다는 점이다. 즉, 사회연구 그 자체보다는 과학적 방법론에 더 관심이 많으며, 이들의 ‘과학적 방법’은 사회과학 연구의 계보가 아닌 자연과학의 철학에서 파생된 것이다.
추상적 경험주의의 대변자인 라자스펠드는 ‘사회학’을 방법론적 전문화의 관점에서 하나의 전문분야로 정의한다. 문제의 영역, 즉 아직 미개발 된 연구 주제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완전히 발달한 사회과학’으로 바꾸는 것이 사회학자의 역할이다. 이에 대한 밀즈의 비판은 그들이 사람들 개인의 환경에 지배되어 사회구조의 문제를 회피한다는 점, 통계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반복적인 문제-예를 들어 선거와 같은-를 주로 연구하는 점,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적 한계 때문에 역사적 사회사건보다는 현대적인 사건을 더 강조한다는 점 등이다.
추상적 경험주의자들은 그들의 연구성과가 빈약한 것은 그 ‘방법’에 내재한 어떤 특징 때문이 아니라 돈과 시간이라는 ‘우연적 성격’의 원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주로 연구 자금을 댈 수 있는 재단에 의해 수행되었고, 또 상업적이고 관료적인 일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조사자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연구는 일종의 블록 쌓기처럼, 연구들이 쌓이고 쌓이면 사회에 관한 중요한 결과들이 일반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주의자들의 변명에 대해 밀즈는 그들의 이론의 문제는 결과의 빈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과학이 ‘이론’과 ‘경험적 자료’의 두 축으로 검증된다고 할 때, 이들에게서 ‘이론’은 통계적 발견을 하는데 유용한 변수들이고, ‘경험적 자료’는 반복적이고 측정가능한 통계적으로 규정된 사실에 한정된다. 이렇듯 제한된 이론과 자료를 통해 고찰할 수 있는 결과는 그만큼 제한적이다. 역사적 사회구조에까지 시야를 넓히지 않은 채 소규모 영역의 표본 조사만을 근거로 삼을 때 이는 몰역사적인 심리학주의에 불과하다. 추상적 경험주의자들도 경험적 연구의 서문으로서 ‘문제의 문헌’을 개괄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전체 연구에 보조적인 의미부여 이상이 아니다. 방법론적 금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통계를 통해서 현대사회를 해석한다. 그런데, 이들의 방법론인 통계는 과연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또는 그 사실이 과연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실인가. 정확성이 방법 선택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밀즈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진짜 문제를 인식한다면 진리와 중요성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방법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이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사실에만 집착한다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다. 통계적 절차가 유용하게 쓰일 수는 있지만, 일반화하여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방법론에 빠진 추상적 경험주의자들이나 앞서 보았던 개념의 숭배자인 거대이론가들 모두 방법과 이론에만 얽매여 실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실용론의 여러 유형
-사회과학에서의 가치판단
사회과학에서 가치판단은 문제를 선택할 때, 그리고 문제해결과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 가치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치의 의미와 결과를 명백히 밝히고 편향적인 가치평가를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중립을 내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가치 판단’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은폐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이용
사회과학은 관료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관료적 이용은 군장성, 사회사업가, 경영자 등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이용은 이미 사회과학의 존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데, 사회과학자가 창출하는 권력에 대한 이미지와 관념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이미지와 일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쓰임새가 사회과학자의 의도가 아니라도 사회과학은 그러한 역할을 해왔고 또 요구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해 왔던 사례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와 고전파 혹은 신고전파로 분류되는 경제학의 예나 식민주의와 깊이 연루되었던 문화인류학, 그리고 심지어 역사학에서도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목적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과거를 재구성하곤 하였다. 즉, 사회과학은 관료적 관습과 이데올로기적 쟁점에 불가피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관련성 때문에 사회과학의 다양성이나 혼란이 야기되었고, 그 정치적 의미를 은폐하기 보다는 명확하게 천명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실용론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과학은 개혁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었고, 이러한 개혁을 주창하는 초기 중산계급의 사회학이 미국의 제도적 사회학의 원류이다. 미국에서 자유쥬의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근원이자 사회연구의 정치적 공통분모였고, 사회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사회학자는 모든 사회현상에는 수많은 미세한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다원주의적 인과관계’를 가정하였으며 이는 ‘단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것이 자유주의 실용론의 관점으로 다원주의적 인과관계 하에서는 핵심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이 아닌, 사소한 수많은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점진적인 개혁이 해결책이 된다. 자유주의적 실용론에서는 조화로운 균형은 강조되고 갑작스러운 속도의 변화나 혁명적 단적은 병리적인 징후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적 실용론이 단편적인 성격을 가지는 원인은 주로 중산계급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 교과서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유주의적 실용론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점이나 경험이 동질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격을 띨 여지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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