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대학 개정과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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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자의 대학 개정과 해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학』은 자신의 내면을 닦고 나아가 사회를 바로잡는 방법을 내용으로 한다.
그래서 『대학』은 개인의 수양과 관련된 책이며 아울러 정치와 관련되있다.
회재의 대학 주석을 고찰하기 위하여 먼저 회재 토대가 되었던 주자의 대학 개정과 주석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고, 회재의 대학장구보유, 속대학혹문의 내용을 분석하여 비교 고찰해보고자 한다.
1. 주자의 대학 개정과 해석
1) 『대학』의 성립
중국을 비롯하여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북 아세아지역에서 유학만큼 정치제도와 문화생활, 학술과 사상 등 역사의 전반적인 사항과 관련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없었다.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된 유학은 당시의 제자백가와 함께 병칭되었으나, 특히 서한의 무제가 백가를 출척하고 유학만을 존숭하여 박사제도를 두면서부터 공자의 육경을 중심으로 한 유학만이 정치사상과 사회제도로 탐구되어 발전하였고 여타의 사상들은 그 류에 불과하게 되었다. 서한에서는 금문학이 발달했고 동한에서는 고문학이 발달했다. 그 후 위진 남북조를 지나 당대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유전을 계속하며 유학의 본의를 밝히기 위해 수많은 대학들이 연이어 출현하였다. 이들의 연구대상이 한초의 오경에서 당대의 구경으로 넓혀지고 심화되어 방대한 분량의 주소와 집주들이 나왔으나 금문학과 고문학과의 상호 변론과 옹호를 반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송대에는 유학사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성립되었다. 북속시대에는 안으로 정당의 싸움이 계속되고 끊임 없는 외세의 침략과 이방의 사조들이 난무한 시대여서, 당시의 지배층은 중화적 정통사상과 주체성 확립을 위하여 신유학의 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학문의 경향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불교와 도학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삼아 유교경정은 연역하여 주석했다. 특히 『대학』과 『효경』의 경우에는 고본의 편차에 의구심을 가지고 그 편차를 경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성리학의 새로운 학풍이 송대에 풍미하였고 명대를 거쳐 청대까지 관치나라의 관리가 맡아 다스리는 정치) 위주의 학풍으로 그 맥을 계승하였다.
대학은 본디 중용과 함께 예기의 한 편이었으나, 단 권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송대의 성리학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중말의 대가 한유는 『원도』에서 대학의 수제치평의 도가 요순이래 맹자에 전수한 심법이라 단정하였으며 그의 제자 이고는 『복(부)성서』에서 유교 해탈론을 전개하여 전통 유학 내에서 지고지성의 성격자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하였으니, 이 두 대가는 송대 성리학의 선하로서 인정받고 있다.
이제 『예기』의 일편인 『대학』이 독립되어 다른 경전과 함께 십삼경으로 인정받아 중시되기까지의 과정은 『예기』의 변천과 대학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서한의 금문학자들은 시 서 예 악 역 춘추의 육경이 주공(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 무왕이 죽자 조카를 도와 주 나라의 기초를 다짐) 옛 전적(서적)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육경 가운데 『악경』은 없으므로 한무제 때 오경박사 백제(百濟) 때, 석학(碩學)에게 주던 칭호(稱號). 『시경(詩經)』, 『역경(易經)』, 『서경(書經)』, 『춘추(春秋)』, 『예기(禮記)』에 능통(能通)한 학자(學者)에게 주었음
만을 두었다. 이 오경에서 『예경』은 『의예』를 가리키며 이에 대한 『기』는 의예에 종속된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했고 의례를 전수할 때도 약간의 기를 선집 한 사람이나 한 시대(時代) 또는 한 나라의 작품(作品) 가운데서 몇 가지의 작품(作品)을 추려서 편집(編輯)한 책(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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