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1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1
 2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2
 3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3
 4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대 중국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Ⅰ. 들어가는 말
국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오늘날, 세계의 중심 무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중국의 진로에 이론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중국 사상계의 논리 구조에 대해 ‘중국학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21세기에 더욱 확산되고 있는 신중화사상의 본질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철승, 「현대 중국사상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 『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1 인용
즉, ‘중국학열’을 바탕으로 한 신중화사상의 의미와 전개, 그것이 중국 내부와 타 국가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파악하고자 한다.
Ⅱ. ‘중국학’의 개념과 ‘중국학열’의 성립배경
중국은 1990년대부터 ‘중국’의 민족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와 사상 등 전통적인 내용을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하는 ‘중국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중국학열’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열기는 현재에도 여전히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며, 이는 중국이 그들에 필요에 의해 ‘중국학열’을 조성, 확산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의 책, p.501 참조
1. ‘중국학’의 개념과 ‘중국학열’
중국의 학계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형성된 ‘중국학(中國學)’에 대해 ‘중국학열’과 ‘중국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국학열(國學熱)’과 ‘국학’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이 ‘국학’이라는 말은 1990년대에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근대 문화 발전사에 나타난 학술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1840년의 아편 전쟁에 실패한 후, 중국인은 부국강병을 위해 서양 문명을 학습하는 열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중국 전통 학술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지면서 나타났다.그런데 이 개념은 근원적으로 일본의 학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일본에서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왕조 시대의 역사와 제도와 문학 등의 일본 고전을 연구하는 학파인 ‘국학파’란 단어를 근대에 중국이 차용한 것이다. 위의 책, p.502 참조
중국의 ‘국학’개념은 청대의 한학을 계승하고 근대 교육제도에 입각하였으며, 중국의 전통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실증적인 학문체계이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역사에서 출현한 ‘국학’이라는 개념이 강자의 위치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약자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사상을 탐구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방어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책, p.502 참조
이러한 ‘국학’개념은 1990년대에 이르러 중국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중국학열’의 이론배경이 되었다. 위의 책, p.502쪽 인용
2. ‘중국학열’의 성립배경
1989년에 북경에서 발생한 ‘6.4 천안문 사태’는 중국의 사상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의 지도부는 사회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중국식 사회주의 사회의 정착에 제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중화민족의 정체성에 타경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등소평은 서양에서 말하는 인권은 강함을 믿고 약함을 능멸하며 부국의 이익을 지키고 패권주의와 강권주의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기에 그것보다 중국의 국권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중국의 정체성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또한, 자유주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진압 후 중국은 ‘중국학열’을 조성시켰다. 위의 책, pp.504-505 참조
Ⅲ. ‘중국학열’의 전개 과정과 중화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