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문학의 비평- 형식 논쟁과 김기진의 단편서사시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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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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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6.프로문학의 비평
내용-형식 논쟁과 김기진의 단편서사시론에 대하여
1. 내용-형식 논쟁에 대하여
초기 한국 근대문학에서 가장 뚜렷한 문학적 흐름으로, 집단화된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 프로문학이다. 근대에 프로문학이 집단화된 형태로 존재했던 것은 약 1925년부터 1935년 사이의 10년가량이지만, 하나의 문학적 흐름으로 보자면 대략 3.1운동 직후부터 30년대 말까지, 더 나아가 1945년 8.15 직후와도 연관이 있어 20년대 이후 근대문학의 오랜 기간을 관통한 큰 물줄기나 다름없다.
프로문학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약칭 KAPF)와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 KAPF가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되던 시기를 프로문학의 본격화단계나 절정기로 규정하는데, 이 때의 프로문학의 전개과정은 때로는 직접적인 원천으로, 때로는 상관적인 대상으로 근대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프로문학 경향이 등장하고 조직화되면서 제기된 주요 쟁점은 한국 근대문학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용-형식’ 논쟁이 이에 해당된다.
내용-형식 논쟁은 초기 프로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한 김기진과 박영희 사이에 전개된 논쟁으로, 이후 프로문학 외부로까지 확산되고 카프 결성을 전후한 조직노선 문제로 이어져 프로문학의 이후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매개 역할을 한다.
이 논쟁이 일어나게 된 시기는, 1926년 즈음부터이다. 신경향파문학이 무산계급문학의 개념에 대한 선전과 기성 문단에 대한 도전의 시기를 거쳐, 점차 각종 작품들이 제작되던 시기였다. 이때는 무산계급 문예운동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있었으나, 정작 창작상으로도 조직상으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던 시기여서, 무언가 변화를 꾀해야 했다. 그때 때마침 김기진과 박영희 간의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김기진은 1926년 12월 의 문예월평에서 1926년 11월에 발표된 박영희의 와 를 두고, 박영희의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고까지 할 정도로 수준미달임을 신랄하게 폭로하였다. 또한, ‘소설건축설’ 이라고 불리우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내놓았다.
“... 그 결과 이 일편은 소설이 아니요 계급의식, 계급투쟁의 개념에 대한 추상적 설명에 시종하고 말았다. 일언일구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소설이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히어 놓은 건축이 있는가?”
즉 소설의 구상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나, 소설화되지는 못하고 개념에 대한 추상적 설명에서 그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기진은 이 작품들뿐만이 아닌 박영희 소설의 대다수 작품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한 개의 제재를 붙들고서, 어떤 목적지를 정해놓고 반드시 이것을 거기까지 끌고 가겠다는 계획을 갖고선 되든 안 되든 억지로 끌고 오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자연스러운 부분과 모순된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기진은 이런 점에 대해 “선전 문학도 문학으로서의 요건, 소설로서의 요건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충고를 했다.
실제로 김기진과 같은 의견의 비판이 『조선문단』의 합평회에서도 나온 적이 있었다.(사상과 관념을 전달한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설 구성의 원리와 묘사 기법 등을 무시한다) 박영희는 그에 대해 「진실을 잃어버린 합평」이란 글을 『개벽』 6월호에 써 반박했다.
그 후에 내부 인물인 김기진의 비판이 이렇듯 또 나오자, 박영희는 발끈하여 곧바로 (조선지광. 1927) 라는 글을 써서 반박했다. 문예비평가는 자신이 속한 계급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계급적’이며, 그에 입각해 프로문예 비평가는 프로작가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지도의 기준은 부르주아적개인주의적예술지상적향락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체적집단적계급적사회변혁적인 데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르주아 문예비평가는 지금까지 작품의 구조에 중요한 착점을 두었으나, 프로문예 비평가는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적 의식을 기준으로 프로작품의 가치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영희는 김기진의 ‘소설건축설’에 반박해 ‘치륜(톱니바퀴)설’ 을 주장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단언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작품은 군의 말과 같이 독립된 건축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상론 말과 같이 큰 기계의 한 치륜(齒輪)인 것을 또 다시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전 문화가 한 건축물이라 하면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은 그 구성물 중에 하나이니 서까래도 될 수 있으며 기둥도 될 수 있으며 기왓장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의 말과 같이 소설로써 완전한 건물을 만들 시기는 아직 프로문예에서는 시기가 상조한 공론(空論)이다. 따라서 프로문예가 예술적 소설의 건축물을 만들기에만 노력한다 하면, 그 작가는 프롤레타리아의 문화를 망각한 사람이니 그는 프로작가는 아니다. 다만 그는 프로생활묘사가에 불과하다.”
이처럼 박영희의 주장에는 문학이 변혁운동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김기진과 박영희의 주장 사이의 엇갈림이 보인다. 김기진은 기본적으로 1926년으로서 시험기를 마친 프로문예운동이 이제 본무대로 들어선 만큼 본질론적 논의를 하는 것도 시급하단 인식 하에 내용-형식 문제를 언급함으로서 프로문학작품도(설사 선전문학이라도) 어디까지나 ‘작품’ 이기 때문에 그것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들이 있다(내용과 형식의 조화)는 것인데, 박영희는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운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식과 태도의 문제로 접근해버린 것이다. 이후 이 둘의 논쟁은 점차 심화되고 변질되어, 결국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문학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은 무엇인가”하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아닌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하는 문학의 기능 및 문학가의 태도에 대한 언급으로 변질됨으로서 바람직한 논쟁형태를 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박영희와 김기진이 아오노 스에키치(靑野季吉)의 외재비평론을 해석한 방식의 차이에서도 볼 수 있다. 박영희는 아오노 스에키치의 “내재적 비평은 작품의 내부를 해부하여 내용과 기교의 관계 등을 분석하는 비평으로서 문학사적 비평이라 하고, 외재적 비평이란 주어진 예술작품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예술가를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서 인식하여 그 현상과 존재의 사회적 의의를 결정하는 비평으로 이것을 문화사적 비평이라고 한다”란 발언에 근거하여, 프로문예 비평가라면 문화사적 비평을 해야 하는데 김기진은 문학사적 비평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기진은 아오노 스에키치의 외재비평론 중 다음과 같은 부분에 주목했다. “내재적 설명이 없이는 사실 외재적 결정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두 비평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김기진은 이에 따라 “우리 문예비평가는 내재적 비평을 취입한 외재적 비평을 해야 한다” 라는 주장을 세웠다.
참고문헌
3. 참고문헌
한국의 비평논쟁사 연구 (1999. 윤병로. 임규찬. 성균관대학교)
한국 근현대문학사 (2000. 윤병로. 명문당)
김기진과 최두석의 시론 (2007. 윤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