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디지털 문화와 아날로그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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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디지털 문화와 아날로그 사유
1. 디지털이란?
디지털이란 본디 손가락(digit)을 가리키는 말로 셈하는 것을 뜻한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셈을 하듯이, 디지털이란 일정한 양을 독립적으로 표현함을 말한다. 따라서 수(數)는 디지털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또한 디지털은 개별적 양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 사이의 값은 없다. 그런 점에서 그 값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82 참조
우리가 ‘얼마큼이냐?’고 물었을 때, ‘이만큼’이라고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면, 그 양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셋 또는 넷을 표현하면 그 양은 매우 정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세계의 일은 모두 그렇게 가리켜지지 않지만 오늘날의 문명은 숫자로 이야기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세계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얼마큼 사랑해?’라는 질문에 ‘이만큼’이라면서 두 손을 활짝 편다. 숫자적이지 않고 지시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시성을 아날로그라고 부른다. 사랑에 대한 답으로 디지털적인 답은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한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82-83 참조
디지털은 셈이며, 아날로그는 가리킴이다. 그 둘의 철학적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디지털은 ‘나뉨’ 곧 분할(分割)이며 아날로그는 ‘이어짐’ 곧 연속(連續)이다. 디지털이 처음부터 정확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분할이 무한은 아닐지라도 극한까지 이름으로써 정확도를 높였고, 따라서 디지털은 정확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83
2. 디지털의 효용
우리가 컴퓨터 화면에서 만나는 색은 모두 언어화된다. 컴퓨터 언어 속의 숫자는 곧 색이며, 그 미분된 색깔끼리 만나 어떤 전체적인 색깔을 이루며, 나아가 그림을 만든다. 아날로그에서 혼색(混色)은 색깔과 색깔의 물질적이며 직접적인 혼합(混合)이지만, 디지털에서 혼색이란 미분된 공간의 개별적인 집적(集積)일 뿐이다. 따라서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면 어떤 아가씨의 얼굴도 네모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네모가 그녀의 미모(美貌)를 나타내는 정보일 뿐이다. 더 나아가 그 네모는 일련의 숫자로, 그것도 이를테면 01010100101111……로 이루어진 행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디지털 속에 빠져 열광하거나 흥분한다. 디지털에 돈을 바치고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디지털화되지 않은 것에 불만족스러워하고 초조해 한다.
이렇게 디지털은 우리 가까이 와 있다. 우리가 좋건 싫건 우리는 이미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모습은 이렇게 해상(解象)되고 있다. 이른바 분할과 그 집산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모든 사물의 정보를 해체하여 전송가능토록 만들어주고 있다. 문자는 물론, 사진과 영상까지 우리는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의 효용성은 진정 극대화되어 있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87-88
3. 전통 속의 디지털
동양전통 속에서 디지털적인 사고가 낯선 것만은 아니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91
서양철학사 속의 라이프니츠는 인공언어를 꿈꿨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91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라이프니츠가 바로 『주역(周易)』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가 역의 64괘를 중국의 선교사로 나가 있던 예수회 소속 프랑스 부베 신부로부터 받은 사실은 정확한 날짜가 고증될 정도로 분명한 사실이다. 라이프니츠는 나름대로의 2진산술법(1679)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복희(伏犧)로 대변되는 4천 전의 역의 논리에 경이를 금치 못했다. 라이프니츠는 세계 공통의 보편학을 건설코자 했으며 그를 위해 자신의 2진법으로 ‘발견의 논리학’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정세근, 「디지털문화의 철학적 이해」, 『철학의 21세기』, 소명,2002 p.92
라이프니츠는 ‘중국철학논고’의 마지막 부분 ”복희의 부호와 2진법“에서 --와 ―의 64가지 변화수를 2진법 부호 0과 1의 64가지 조합으로 해석한다. 모든 자연수를 2가지 수 1과 0으로 표현하는 것이 二進法이다. 즉 라이프니츠는 모든 변화, 존재는 대립되는 2성분 1과 0으로 환원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朴商換,「周易과 라이프니츠」, 『대동문화연구』 28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93 p.1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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