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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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구를 자신의 미니홈피의 게시판이나 다이어리에 써놓은 것이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읽고 싶은 책을 찾는 편인데, 그 중에서 가장 공감을 했던 글귀가 바로 위에 써놓은 글귀였다. 나는 쓸데없는 인연, 그리고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과거를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휴대폰 전화번호부 정리를 자주 하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한 번씩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면 필요가 없어서 지운 번호라는 것을 기억하면서도 누구냐고 묻게 되고, 잊을 수 없는 번호에는 나도 모르게 연락을 하게 된다. ‘나’의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모두 번뇌라며 강원도에 있는 절로 들어가다가 만난 군인과 사랑에 빠져 두 달 만에 결혼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1년 만에 총기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사람이 싫다며 자동응답기를 사온다. 하지만 연락을 하면 벨이 3번도 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언젠가 내가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다 지쳐,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지 않겠다고 스팸번호에 저장하고 수신거부 설정을 해두고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두었던, 그러고서 나중에 휴대폰을 열고 수신거부 목록과 스팸문자함을 조심스레 열어보던 내 모습. 어쩌면 ‘나’의 친구와 닮은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경의 소설은 사실 처음 읽어보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국 소설보다는 일본 소설에 흥미를 가지는 편어서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던 차였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본 글귀는 당시의 내게 너무나 와닿았었고, 자연스레 은희경의 책에 손이 가게 만들었다. 은희경의 소설은 예상했던 대로 내가 좋아하는 문체로 쓰여져 있었다. 소설을 읽을 때 쉽게 몰입을 하는 편이라 감정의 기복이 너무 격한 소설을 읽을 때면 숨이 턱턱 막히는 편이다. 덤덤하게 조용히 진행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 점에서 은희경의 소설은 내게 너무도 잘 맞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내가 반해버린 문구가 속해있는 소설이었고, 책에 수록된 많은 단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우리가 느끼고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무언가를 적절한 단어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1. 사랑이 수반하는 배타적 독점욕
소설은 ‘나’가 3년 전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조그만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나’는 어느 날 회사 선배와 함께 어느 한 모임에 참여해서 ‘진초록 폴로셔츠에 던힐을 피우는 나직한 목소리의 은행차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부도덕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가 유부남이기에 ‘부도덕한 사랑’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아내에게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질투 또한 느끼지 않는다. 그와의 만남은 ‘사랑’이기는 하지만 결코 그를 빼앗기 위한 사랑이 아니었고, 그와의 관계는 결혼이나 취직, 진급처럼 누구나 갖추기 마련인 공개적인 신상과는 상관없었고, ‘나’는 그것들을 점유해 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오랜만에 운동을 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통증을 느끼듯이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청혼을 하고 난 뒤 ‘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 다음 그녀는 ‘사랑이 수반하는 배타적 독점욕’을 느끼고 만다.
“경치를 독점하기 위해 높이 담장을 쌓아놓는 사람은 동화속의 거인을 빼고는 아무도 없다. 사랑을 그렇지 않다. 언제까지나 지속된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배타적이 된다. 독점욕이 생기고, 그 독점욕이 구속을 낳는다. 그 때문에 사랑 자체가 파괴된다 할지라고 그 덫을 피할 수는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와 결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 글귀를 읽는 순간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언제나 내가 궁금해 했었던, 하지만 알고 있었던 무언가가 이 몇 문장만으로 설명이 되고 만 것이다. 소유욕이라는 짧은 말로는 정의내리기 힘들었던 그 감정.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귀를 읽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말 것이다.
2. 아이러니
‘나’는 그의 청혼에 이렇다할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와 오피스텔에서 잠이 든다. 그날 새벽 ‘나’의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하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매일 밤 어머니와 통화를 하거나, 아니면 그를 만나는 생활을 한동안 반복하게 된다. 매일 매일, 세상은 온통 딸들과 어머니들,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남편으로 꽉 차있는 밤이 반복된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여자에 대한 원망을 들을 때마다, 그에게서 계속되는 구애를 받을 때마다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말에 긍정을 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그와의 사랑을 지속하게 되면 ‘나’는 가족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밤 ‘나’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그의 아내가 전화를 받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는다. 그 뒤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의 여자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날 밤 어머니의 전화기 건너 슬그머니 전화를 끊은 여자가 나는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묘하게 겹쳐가는 자신의 연애와 아버지의 연애는 ‘나’를 조금씩 조여오기 시작한다.
묘하게 닮아있는 부녀의 연애는 아이러니함을 불러 일으켜 흔한 불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느끼게 하고, ‘부도덕한 사랑’을 더 ‘부도덕’하게 느끼게끔 만든다. 이런 독특한 구조가 은희경다운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제로섬 게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어머니와의 이혼을 굳게 결심한 아버지는 ‘나’에게 전화를 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포기했던 공부를 다시 해보지 않겠냐며 프랑스 유학자금을 대주겠다고 계좌번호를 부르라고 한다. 뜻밖의 행운, 그리고 희망.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절망과 불행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나’는 일찌감치 깨친 적 있었던 원리를 깨닫게 된다.
“이 세상이란 갑의 불행이 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정도는 나도 일찌감치 깨친 바 있다. 강선배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사무실의 나머지 사람들이 몇 달 동안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제 손으로 어머니 몫의 행복을 빼앗아 제 앞에 쌓아놓는 딸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전화로 더욱 그와의 이별을 결심하게 된 듯했다. 아버지에게서 자기가 속했던 가족의 세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그를 본 것이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이제는 그와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딸과 어머니와 아내와 남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이 다른 여자의 삶의 터전인 가족을 깨뜨리는 일이 되는 것을 ‘나’는 감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서술하는 것이 훌륭한 작가라고 한다면 은희경은 훌륭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륜이라는 흔한 소재로 식상하게 전개될 법도 했던 이 소설은 ‘사랑이 수반하는 배타적 독점욕’과 ‘아이러니’와 ‘제로섬 게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인해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가족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은희경 특유의 담담하고 조용한 문체, 그리고 무언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문구가 가득한 소설로 한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