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사상교류론 - 천황제의 바탕이 된 신도 사상, 일본인의 조상숭배 영혼관, 일본의 민족주의(民族主義) 교육, 우리와 다른 일본인의 언어 사용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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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북아사상교류론 - 천황제의 바탕이 된 신도 사상, 일본인의 조상숭배 영혼관, 일본의 민족주의(民族主義) 교육, 우리와 다른 일본인의 언어 사용 방식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 序 論
이 달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주변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다섯 번째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한데 이어 그 다음날에는 무려 195명의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에 안장된 태평양 전쟁 전범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최근 다시 도마 위에 올라온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하여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개인 자격으로 한 참배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고, 일본 국회의원들은 기독교인이 교회에 가는 것에 비유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오사카 고등법원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왜 거듭 전범자를 모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는 것일까?
국가를 이끌어 가는 총리가 참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로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적외교적인 계산이 깔려있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일본 국민들의 정서가 고이즈미의 입장과 일치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는 전몰자 참배는 다른 나라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일본의 국민적 정서로 해석할 수 있다. 주변국들이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 부활을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일본은 과거 2차 대전의 악령을 망각하고 21세기 군사대국화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한일 관계와 동북아 평화안정,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일본이 왜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을 , , , 이라는 각도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Ⅱ. 本 論
1. 천황제(天皇制)의 바탕이 된 신도(神道) 사상
일본 역사는 항상 천황과 함께 있어 왔다. 비록 실질적인 권한은 막부의 무사들이나 제국주의 시대의 군인들에게 주어져 꼭두각시에 머물렀던 때가 더 길었지만, 그 어느 세력도 감히 천황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다른 나라처럼 권력을 일원화시키지 않고 이중구조를 유지해 온 이유로 천황을 문(文)의 정점으로 내세워 문(文)과 무(武)의 균형을 이루려는 의도에서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이 이중구조를 띠고 있을 때 일본은 태평성대를 구가했고 천황이 독자적으로 전권을 행사한 시기는 언제나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다. 건국초기부터 8~9세기 고대를 제외하면, 무사 세력이 권력을 잡은 이후의 남북조시대나 근세 메이지유신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시대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찰해 보면 신국(神國) 사상에 기초한 종교적 지배 원리라는 관념적 한계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권력을 잡은 무사들은 신국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천황을 극진히 받들었으며, 천황에 대한 숭상과 충성심은 결코 무사도(武士道)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일본인의 관념은 유(儒)불(佛)신(神)이 기본 근간을 이루고 있다. 모방을 통한 자기화에 능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토대가 되는 정신사상을 적절히 도입하여 한국인들의 그것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그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먼저, 유교는 신분 제도와 무사도의 확립에 기여하고 충효의 도덕윤리에 의해 반역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등 제도를 고정화시켜 사회와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불교는 권력자가 포교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최상의 신앙으로 지배관리체제를 만드는 데 원용하여 국가운영과 행정의 원활화를 도모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마지막으로 일본만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신도(神道)는 태초에 일본을 창조한 신의 자손으로, 농경문화와 생산, 제사뿐만 아니라 죄악의 사함을 비는 신과의 대화 경로를 독점하여 행사하는 신제권(神祭權)을 통할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불안을 지켜주는 위치를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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