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폭력을 단죄하라 -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VS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_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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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국가의 폭력을 단죄하라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VS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폭행
목차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사건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 폭행 사건
우리 반 친구들의 생각
저자의 생각
우리의 생각
Q&A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사건
한센병은 나병, 문둥병이라고 불렸던 병인데. 신체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 병이지만,
한 번 걸리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을 정도였다.
1916년(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한센병 격리 수용시설을 만든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소록도병원에서는 전염병 예방과 우생학적 이유를 들어 단종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에게 강제로 낙태와 불임 수술을 실시한 것이다.
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이 정책은 계속됐다.
광복 후 대한민국도 한센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버린것이다.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
이 사건에 나오는 인물인 정유창씨는 열입곱 되던 해 갑자기 손발에 감각이 없어졌다.
얼마 안 가 손발과 얼굴에서 살점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늦은 밤 안방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와
옆에서 어머니가 흐느끼는 모습을 엿보았다.
어린 유창은 다음날 집을 나갔고 구걸과 막일로 하루하루를 버텨갔는데
그것도 오래가진 못하였다.
외모 때문에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였으니
병을 옮긴다, 흉측스럽다, 돌팔매질에 욕설이 날아왔다.
식당도 이발소도 들어갔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정씨는 갈 곳 없이 떠돌다 부산에서 단속반에 잡혀 소록도로 끌려왔다.
정씨는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첫날부터 스무 날을 몽둥이 찜질을 당하였고
그때가 1973년,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 박소녀씨는 열여섯에 얼굴이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얼굴을 싸맨 채 빨래터에 갔는데 아낙들이 모두 자리를 피하였다.
벌써 동네에 소문이 퍼져버린 것이다
며칠 후 마을장정들이 집에 몰려왔다.“문둥이와 같이 살 수 없으니 얼른 나가!”
그리고 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피한 박씨 가족들은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박씨는 손가락질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도 싫었다.
그래서 1975년 녹동항에서 소록도행 배를 탔다.
정유창과 박소녀, 처지가 비슷한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 그리고 살가운 사이가 됐다
한 살림을 차린 두 사람에게 이듬해 아이가 생겼다.
하늘의 축복인가. 아니다. 재앙이었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출산의 기쁨은 ‘정상인’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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