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1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1
 2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2
 3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3
 4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4
 5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5
 6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6
 7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7
 8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윤심덕과 김우진, 그들은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현해탄에서 이루어진 ‘사의 찬미’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경,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운행하던 부관연락선 도쿠주마루의 급사가 갑판을 순찰하다가 일등선실 3호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전등으로 안을 비춰보니 승객은 오간 데 없고 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상한 낌새에 객실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더니 가방 위에 ‘보이에게’로 시작하는 메모지 한 장과 팁 5원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미안하지만 짐을 집으로 보내주시오.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 경성부 서대문정 윤수선’
메모를 본 급사는 투신자살로 판단하고 즉시 선장에게 알렸고, 사라진 일등실 승객 두 명을 찾기 위해 승조원들과 승객들은 배 안과 부근을 수색했으나 언제, 어느 지점에서 투신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발견치 못했다. 선실 안에는 여자 지갑에 현금 140원과 기타 장식품, 남자의 것으로는 현금 20원과 금시계만이 남아 있었다. 사라진 자살자의 신언을 파악하기 위해 선객 명부를 조사해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경성 서대문정 일정목 73번지 윤수선, 여자, 31세
조선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 남자, 30세
수산은 김우진의 호이고, 수선은 김우진이 지어준 윤심덕의 호로 수산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이들의 투신 정사는 부산에 도착한 연락선 선장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언론에서는 조선 사람의 연락선 정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는 물론 도쿄아사히신문에서 사회면 거의 전체를 이들의 정사 사건 보도에 할애했으며, 8월 내내 사회면 주요 기사로 이들의 과거 동정과 애정 관계를 보도했다. 특히 윤심덕이 죽기 전 오사카의 닛토축음기회사에서 를 녹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당시 윤심덕은 조선 최고의 여류 성악가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음악가였고, 김우진은 목포 백만장자 김성규의 장남으로 와세다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다. 그들은 왜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을까? 김우진이 남매까지 둔 기혼자였다지만 당시 유부남과 신여성의 연애는 흔한 일이라 지탄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무엇이 그들을 현해탄에서 정사하게 했을까?
‘왈녀’라 불리던 여인
윤심덕은 1897년 평양 순영리에서 부친 윤석호와 모친 김씨 사이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윤심덕이 태어난 직후 그의 가족은 진남포로 이주했다. 부모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윤석호는 나물 장사를 하고 김 씨는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힘겹게 살았지만 네 자녀를 모두 훌륭히 교육시켰다. 맏딸 윤심성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경상북도 안동으로 출가했고, 막내딸 윤성덕은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윤심덕의 하나뿐인 남동생 윤기정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도쿄음악학교와 오하이오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모친 김씨가 윤심덕을 임신했을 때 쌍둥이를 임신한 듯 보일 정도로 배가 불렀다. 윤심덕은 ‘6척 장신(180cm)’이라 불릴 만큼 키가 컸고, 어려서부터 성격이 사내아이같이 활달해 ‘왈녀’라 불렸다. 둘째였지만 4남매의 리더 노릇을 했고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만큼 우애가 남달랐다.
여기까지가 학계에 공인된 윤심덕의 가정환경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기록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