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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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법원, 자폐증 딸 살해한 30대 친모 집행유예
주부 서모(36)씨는 병원으로부터 이제 갓 돌을 지난 예쁜 딸이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매우 괴로워했다. 서씨는 비정상적인 행동만 하는 딸을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어 결국 교통사고 후에 딸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서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재판부는 서씨가 평생 형벌보다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점을 감안해서 이런 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만약 내 아이가 서씨의 아이처럼 자폐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서씨는 천륜을 저버리고 어린 자식을 살해한 극악무도의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러나 법원은 서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이 이토록 짧은 징역세월을 선고한 것은 서씨의 심리적·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점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자폐 혹은 장애아동을 키우는 모든 부모들이 서씨와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서씨가 느꼈을 슬픔과 고통은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한다. 실제로 2006년에도 한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그들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위 사건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서씨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자폐 혹은 장애아동을 키우는 서씨와 그 외 부모들이 이런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의 인식과 정부의 장애 아동을 위한 복지가 개선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나라에는 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 복지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장애인연금 공약조차 파기된 실정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또한 곱지 못하다.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장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보면 자연스레 피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씨는 자폐 아동을 자식으로 둔 부모다. 피할 수 없는 천륜으로 묶여져 있기에 더욱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부모기 때문에 더더욱 자식의 미래가 암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어느 부모나 자기 자식은 소중하기에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오히려 성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로 인해 서씨, 그리고 서씨와 같은 이들이 자식이 더 자라기 전에 편하게 해주겠다는 잘못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결국 그 감정이 자식의 죽음이라는 벼랑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문제는 사회인식과 자폐,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다. 사회인식적인 개선은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 자폐, 장애인을 냉담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냉담한 시선을 동정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아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눈빛과 손길을 건네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게 된다면 자폐, 장애인들은 마음의 상처를 덜 얻을 것이고, 그로인해 그들의 부모들도 걱정보다는 안심을 하며 그들을 키우게 될 것이다. 또한 자폐, 장애인들은 위한 복지가 개선되어야 그들이 마음 놓고 사회진출을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많을수록 부모들도 좌절보다는 긍정적인 희망을 놓지 않고 아이를 키우게 될 것이다.
회사 옥상서 담배 피운 대기업 직원 ‘권고사직’
아시아나항공 직원 A씨는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임원에게 현장에서 적발되어 퇴사 권고를 받았고 결국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B씨는 회사 밖에서 흡연을 했음에도 몸에서 담배냄새가 난다는 말에 흡연 사실을 인정했고 그 이유로 이 일에 대한 징계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아시아나 측은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다 적발될 경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제출했고 그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결과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금연정책을 펼침에 따라 직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최근 금연정책이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기업들이 흡연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1991년 이후로 모든 사업장에 금연을 실시했고 직원들에게 금연동의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직원들을 흡연의 이유로 감봉 또는 인사조치를 취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동의서를 어쩔 수 없이 쓴 직원들도 많기 때문에 아시아나의 해명은 합당하다고 볼 수 없다. 처음부터 이 기업의 금연정책은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담배가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간접흡연을 통해 주위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주기는 하지만 흡연은 어디까지나 흡연자 본인의 자유이다. 최근 들어 비흡연자들을 위해 거의 모든 실내에서는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실내에서 금연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기사의 상황처럼 무조건적인 금연정책을 펼치면 비흡연자인 직원들은 찬성할 수 있겠지만 흡연자 직원들에게는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B씨는 밖에서 피고 들어왔어도 징계를 받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대사회가 맞는지 의심된다.
또 다른 사례로 CJ제일제당 사규에는 ‘회사 반경 1km 이내에서 흡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건물 내부도 모자라서 무려 1km 안에서는 피면 안된다니 직원들에게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규칙이 아닐 수 없다. 그 범위 안에 회사 직원이 아닌 흡연자들도 많을 것이고 그들로 인해서 간접흡연을 하게 될 수 도 있는 일이다. 또한 직원들이 멀리까지 담배를 피러나가면 업무에 방해되기 쉽다. 과도한 흡연규제로 인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흡연자로서 금연정책들이 실시되면서 간접흡연을 그 전보다 덜 하게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흡연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물론 담배가 해롭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흡연률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무턱대고 무조건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고 실내에서 금연을 실시하면서 흡연자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게 됨으로써 길에서 간접흡연을 할 확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기업의 과도하게 강압적인 태도의 흡연규제는 비흡연자들에겐 대찬성할 일이지만 흡연자 직원들의 반발만 더 살뿐이고 직원들로 하여금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여 업무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금연은 회사 내에서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이해할만한 강압적이지 않은 규칙이 필요하다. 징계나 권고사직 같은 처벌만 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은 압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흡연 공간을 따로 만들어서 흡연자의 권리 또한 보장해주어야 한다.
학교 폭력 목격한 학생 44% “얻어맞는 친구 못 본 체했어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학생 5530명을 조사해보니 41.7%가 최근 1년간 학교폭력을 목격했고 그 중 절반은 못 본 척 방관했다. 왜 말리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30.6%가 나도 당할까봐, 26.9%가 관심이 없어서, 23.5%가 도와줘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나도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폭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거나 집단 따돌림을 당할 때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나선다고 해서 딱히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한 친구가 반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도 그 친구를 위로해주기만 했지 앞에 나서서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서지는 못했다. 그당시 나는 같이 괴롭힘을 당할까봐 겁이 났었다. 우리 선에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여러번 선생님들께도 말씀드렸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담임선생님마저도 너무나 무신경했었고 그 분이 도와주신 최선의 해결책은 그 다음해에 그 친구와 다른 친한 친구를 같은 반에 배정시켜준 일뿐이었다.
이 문제는 꼭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조사결과에서도 나오듯이 아이들이 폭력을 말렸을 경우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는커녕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왜 오히려 방관이 최선의 선택이 된 것일까. 이는 선생님, 학교, 그리고 심지어 우리 사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폭력은 오래전부터 항상 재기되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여전히 상황은 심각하기만 하다. 학교 폭력을 아이들만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 측에서도 알고 있지만 방관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해자 학생이 용기를 내서 선생님께 말을 하더라도 그냥 가해자 학생에게 말로 주의를 주는 정도에 그친다. 또 최근 학생 처벌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서 함부로 그 학생을 처벌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처벌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저 주의를 주기만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학교가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방관하는 경우만이라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문제는 그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항상 어른들의 잘못도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방관이 팽배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 행동해라, 튀지 말아라, 평범하게 살아라 등 우리가 학생들에게 나서는 행동이 자기 자신을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끔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도 많은 사건에서 가해자보다 더 나쁜 사람은 방관자라는 얘기를 하지만 정작 본인이 그 사건을 목격했을 때는 그도 또한 방관자가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최근에는 학교폭력 방관자들도 처벌해야 한다는 말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 정도로 이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학교는 좀 더 실질적인 학교폭력 예방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가해자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방관하는 일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의 태도 개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