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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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천지간
1) 색채의 역할
작품 내에선 색채에 대한 묘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외숙을 미치게 하였다는 백색, 상복의 검은색, 죽다 살아났을 때 본 색채들, 감성돔의 미묘한 흰색과 얼룩덜룩한 붉음, 그리고 동백꽃과 손수건에 남은 붉은색 등등. 특히 백색과 붉은색은 등장하는 곳은 달라도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색채들이다. 색채들은 주로 죽음과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색이야 당연히 죽음의 색이라곤 하지만, 백색과 붉은색은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외숙의 광기나 횟감에서 느껴지는 선뜩한 백색, 굿판에서 노파가 입은─상복을 연상시키는─흰옷은 다소 어두운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가 군에서 뇌관이 터졌을 때 본 색과 어린 시절, 푸른색과 보랏빛을 넘어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 본 것은 분명한 백색이었다. 죽은 친구의 얼굴에선 백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은, 그 상징성을 확실하게 만든다. 백색은 단순히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오는 그 경계에 있는 것이다. 하기야 남의 목숨으로 얻은 삶이 그 나름의 어두운 구석을 품고 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외숙이 느꼈던 바와 같이 흰색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붉은색은 이보다 정체가 확실하다. 아예 대놓고 “새빨간 목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횟감에 남은 붉은색이나, 동백(특히 눈─백색─속에 핀 동백), 마침내 여자와 직접 대면한 순간 상처에서 난 피 등. 작품 속 붉은색은 그 자체가 주는 날것의 이미지대로, 생을 상징한다. 이처럼 색채가 작품 속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작가는 종업원의 붉은 스웨터 등, 직접 뭔갈 상징하진 않더라도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독자들은 색채에 대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상기하게 되고, 이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2) 횟집 주인의 역할
횟집 주인은 처음엔 단순히 말 많고 참견하길 좋아하는 인물처럼 등장하나, ‘나’와 여자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아예 여자보다 등장하는 일이 잦아 또 다른 주인공인가 싶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다 보니, 독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비어있는 사실들을 보강해주는 것이 횟집 주인이다. 단순한 정보전달뿐만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는 ‘나’와 독자에게 죽음과 삶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고 환기시키며, ‘나’와 여자의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사건을 진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3) 소리꾼의 죽음
누군가의 죽음이 작은 일이 아니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소리꾼의 죽음 그 자체보단 소리꾼이라는 걸 알기 직전의 상황이다. 작가가 여자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씌워둔 탓에, 누군가의 사망이 확실시된 상황묘사는 ‘나’와 독자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리꾼의 죽음은 여자가 아니라는 알게 된 뒤에도 그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탓에 여자를 찾기 전까지 계속 불안감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이가 죽은 상황이라 해도, 이때 여자의 어떤 부분이 죽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소리꾼의 죽음은 여자의 죽음과 같은 선상에 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그의 죽음의 희생양과 역할이 비슷하다. 소리꾼이 대신 죽음으로써 여자는 죽지 않아도 되며, 그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은 여자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과 같아서, 여자의 내적 갈등 해소─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곤 할 수 없겠으나─의 실마리가 된다.
4) 길 떠남의 모티브
문학에서 길은 운명을 상징한다. 여기서 도달하는 것, 목적지는 크게 중요치 않으며,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목적지는 외숙모의 장례식장이지만 작품 내에서 그 중요성은 덜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요한 건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자에 이끌려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머무르게 되지만 그게 의미 없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자를 쫓아간 완도가 작품 속 진정한 목적지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이 여정에서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있겠다. 작품 밖으로 시야를 넓히면, 실은 장례식장도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며, ‘나’가 들리는 또 다른 정거장이다. 매 순간은 진정한 끝. 즉,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5) 우연에서 필연으로
‘나’가 여자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그를 행동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어린 시절 물에 빠진 것, 뇌관을 밟은 것, 횟집 주인이 노파의 죽음을 목격한 것 등등. 사사건건 따져 들어가면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모든 일은 우연에서 시작되며, 그 우연이 서로 엮여 만들어내는 것이 필연이다. ‘나’와 횟집 주인이 일전에 겪은 우연들은, 여자의 생사에 신경을 쏟는 필연적 이유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시공간의 역할
작품 속 시간적 배경은 겨울이다. 겨울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계절이지만, 눈 속에서 움트는 동백의 생명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는 작품 속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공간적 배경은 완도, 바다를 낀 여관인데, 사람의 발길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바깥과 단절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바다 역시 죽음과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탓에 ‘나’와 독자를 은연중에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7) 서술의 리듬
대사가 적고 묘사와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처진다거나 지루한 느낌이 적다. 의문형이나 더 나아가 자문자답, 혹은 명사로 끝나는 등 단순히 ‘~이다.’라고만 끝나는 서술이 아닌 다양한 어미를 채택한 탓이다. 또, 문단 사이에 낀 단문들과 판소리 가사가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정서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게 하는 등. 적절한 완급이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