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로

 1  소년이로 -1
 2  소년이로 -2
 3  소년이로 -3
 4  소년이로 -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소년이로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년이로
들어가며: 불안을 보는 눈
산업화, 도시화와 동시에 진행된 농촌의 공동화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놓인 19세기 후반의 네덜란드의 시골 마을. 그곳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농사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화가가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는 농사꾼들의 손에 묻어 있는 회갈색 흙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길 바랐다. 고흐의 시선은 현실에 뿌리박혀 있고 그 현실은 ‘불안’이라는 색조를 가지고 있었다. ‘불안’이란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던 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색채였다. 그렇게 고흐의 눈동자가 포착한 것은 현대인들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바로 그 ‘불안’이었다. 명작 《감자 먹는 사람들》 속에서 적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편혜영의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도 언제나 ‘불안’이다. 그녀의 작품 속 군상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자 먹는 사람들》 속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질린 인물들의 표정과 일치할 것이다. 실제로 이 「소년이로」라는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감정어도 ‘불안’과 ‘두려움’이다. 소설가에게 주제란 고흐가 가지고 있는 ‘눈’과 같다. 소설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문장과 묘사는 고흐의 섬세한 밑그림을 뒤덮고 있는 개성 있는 ‘붓질’이다. 편혜영은 그처럼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불안을 보는 눈’을 통해 예민하게 표현해 왔다. 그리고 그 눈은 담담한 문장 속 어딘가에 틈틈이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불안할까. 그것은 ‘죽음’이다. 그 죽음은 한 인간의 숨이 끊기는 물리적인 죽음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사회적 죽음’이다. 현대 사회는 생존을 빌미로 경쟁, 성공, 카드빚을 부추기며 잠시도 쉴 수 없게 우리를 몰아간다. 잠시 일에서 손을 떼고 숨을 돌렸더니 그만 낙오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 예고치 않은 사고로 몸이 불편해 져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사회적 죽음’을 맞았다고 일컫는다.
「소년이로」는 죽음에 익숙하지 않은(혹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소년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병상에 눕게 되어 경제적 능력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통해 물리적인 죽음과 사회적 죽음을 예감하고, 그 예감에 불안해하고, 마침내 두 가지의 죽음 모두를 경험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불안을 그리는 손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 어떠한 화가도 관심 갖지 않았던 보잘것없는 사물들을 고흐는 ‘불안한 눈’으로 포착해 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다른 의미 있는 정물들처럼 공평하게 형상화되고 해석되기를 바랐다. 그 각각이 ‘주체’가 되도록, 다시 말해 불안을 드러내는 소품이자 불안함 그 자체가 되도록 했다. 그 ‘불안’이라는 일관된 화풍 속에서 주관과 객관을 혼동시키고 나아가 그것을 지켜보는 감상자도 풍경이나 오브제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게끔 동일화를 꾀했다.
「소년이로」에서 ‘불안한 눈’에 분한 것은 소진이다. 편혜영이 소진의 시선을 내세운 까닭은 소년이 아직 그 자체만으로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이방인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모두 실존을 자신할 수 없다는 데에서 ‘이방인’이다. 이방인이란 필요에 의해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로,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지만 결코 친밀한 관계를 맺지는 못하는 파편화된 존재들이다. 현대인 각각의 삶처럼, 소진도 “냉대와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견디며 유준의 집이라는 낯선 공간을 어슬렁거린다.
유준 아버지는 셔츠를 풀어 젖히고 복수가 차서 불룩해진 배를 내놓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근처에만 가도 약 냄새가 났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가루를 털어 넣어야 하는 약과 개수 많은 알약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냄새의 일부는 땀이나 물에 축축하게 젖은 셔츠 앞자락에 책임이 있었다.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12페이지)
유준 어머니는 소진을 가장 먼저 깨웠다. 시간이 되어 소진이 식탁에 자리를 잡고 나면 유준 아버지가 약 냄새를 풍기며 어깨를 좁게 모으고 걸어왔다. 냉랭하고 차가운 유준 어머니의 응대는 유준이 나타나면 끝났다. 유준 어머니는 식탁에 들어서는 아들을 향해 상냥하게 웃었고 그제야 처음 봤다는 듯 맞은편에 앉은 소진에게 잘 잤느냐고 물었다. (14페이지)
편혜영 역시 보잘것없는 장면에서 불안을 포착해 낸다. 나아가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해 독자에게 색다른 인상을 준다. 굵은 글씨로 표현된 문장 하나로 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죽음의 냄새’가 단지 유준 아버지에게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비롯해 그가 사용했던 물건들, 나아가 집 전체에도 깃들어 있음을 드러내어 인간뿐만 아니라 그 인간이 속해 있는 공간까지도 불안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인용문을 통해 독자들은 소진이 이방인으로서 소외되어 있는 모습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거실이나 회랑 쪽에서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지그시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진은 숨을 참고 문 뒤쪽 벽에 기댔다. 빈집이어서 소리가 날 리 없다는 사실도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17 페이지)
그 소리가 들린 것은 유준의 열세 번째 생일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거실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진은 몹시 놀랐다. 엉겁결에 컴퓨터 전원을 껐다. 들어와 있으라고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건 유준인데 몰래 들어온 기분이었다. (18 페이지)
유준도 없는 집에서 유준 어머니와 마주치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빈방을 차지하고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소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리라. (18 페이지)
소설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소진의 불안감도 ‘소리’와 ‘시선’에 의해 확장된다. 때때로 유준의 집에 혼자 남아 있곤 하던 소진은 환청을 들을 정도로 예민하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소진은 유준의 아버지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 쏟아질 오해와 의심이 두려워 자리를 피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