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흐르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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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흐르는 북
흐르는 북에서 민 노인과 민대찬의 갈등은 이야기의 큰 줄기 중 하나이다. 처음에 민 노인은 집안에 낯선 손님들이 올 때마다 자리를 비워주었으면 하는 기미를 보이던 아들 내외에게 증오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천 원짜리 한 장가지고 에 술 마시러가는 외출은 자연스러워지고, 아들 내외도 민 노인이 조금이나마 늦게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자물쇠를 잠가 버린다. 민대찬과 민 노인의 단절은 ‘북’으로 인한 ‘정착’과 ‘떠돎’ 때문이다. 민 노인은 예술적 가치 추구를 위해 떠돌이가 되어 자식들과 부인보다는 북소리의 본원적 삶을 택한다. 하지만 민대찬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집에 정착하여 가정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즉 가족우선적인 현실적 가치 추구를 원하는 것이다. 민대찬은 민 노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북치는 민 노인’을 싫어하는 것이다. 민대찬은 민 노인이 보통 노인네로 살길 원한다. 아버지의 북이 상징하는 아버지의 허랑방탕한 한평생이, 자신의 세련된 입신(立身)에 중요한 흠으로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태익은 아버지의 북치는 모습을 접함으로써 떠오르는 고통과 낭떠리지 같은 세월을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민 노인은 손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들 친구들의 부탁에 쉽게 북을 놓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아들과의 단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역마살은 벗어 던질 수 없는 민 노인의 운명적 삶인 동시에 그 시대의 삶인 것이다. 민익태는 북 없이 허깨비로 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고, ‘북장이 아버지’ 보다는 그냥 아버지로 조용하게 살았으면 한다. 이러한 출세 지향적이고 현실적 가치에 맹목성을 지닌 민익태는 과거와의 화해나 용서는 원하지 않는다. 북치는 아버지가 싫든 좋든 그것은 과거의 문제를 알고 아버지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물이다. 아버지 세대가 있음으로써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삶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생각에 물든 전형적 80년대 중년층인 민익태는 과거의 물건과 전통은 모두 남루하고 지금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민익태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과 아들간의 관계도 단절시켜 버린다. 아버지는 아들이 봉산 탈춤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낀다. 이는 아들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간다가는 것에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익태는 자신과 아버지의 갈등을 아들과 손자의 갈등으로 키우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만을 아들에게 넣으려고 하지만 아들이나 아버지의 생각과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민익태와 민 노인은 세대 간의 단절이라는 시대적 문제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한으로 삭히거나 자신의 논리로 가두어 버리려는 소극적 대응을 보인다. 그러나 민성규의 태도는 다르다. 할어비지의 시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8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민익태의 세대들은 현재의 가치를 최고로 여긴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로 이어주지 못하고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버린다. 이를 알고 있는 민성규 세대는 그들의 노력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노력이 할아버지 세대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에 민성규는 할어버지와 포장마차 에서는 친구가 되고자 한다. 또한 북소리는 현재 산업화의 도시기계음 속에서도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고 할아버지를 봉산 탈춤 행사에 참여시킨다. 이는 손자와 할아버지와의 화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 즉 20대 들의 삶에 할아버지의 삶을 조화시켜 화합을 이루고자 한다. 갈등의 해결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벗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그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잠시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포장마차 는 민 노인과 민성규가 화합하는 공간으로 술 한 잔 하면서 둘은 할아버지의 권위와 손자로써의 예의를 잠시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한다. 민성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을 알면서도 민 노인의 주위를 맴돌면서 할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주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할아버지를 봉산 탈춤 발표회에 참여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처음 민 노인의 손자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숫사슴과 같은 손자의 행동에 반강제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민 노인이 북을 치는데 생각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연습과 손자의 체면을 위해서 간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들 내외는 자신의 북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손자만은 자신의 북소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민 노인은 기쁨과 함께 자유를 느낀 것이다. 이렇게 민 노인은 손자를 위해서 연습에 참가하였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예술이라는 본원적 삶을 찾아가는 자신과 아들의 갈등을 손자 세대와의 화합 추구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목적성을 지닌다. 이는 두어 번의 연습에 더 참가 한 뒤 민 노인이 ‘모시두루마기를 입지 않고 어떻게 북채를 잡을 수 있겠는가’하는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억압 되어 숨어있던 자신의 모습을 점점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민 노인은 가락과 소리에 자신을 내맡기고, 턱 턱 꽂히는 북소리, 늙었지만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냈다는 뿌듯함에서 나타나듯이 거치적거리는 것만이 존재했던 현실에서 과거보다 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과거는 단지 유랑이었다. 자신의 북소리를 남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즉 자신의 역마살 기지 때문에 북소리를 계속이어 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주위에는 아들 내외와는 다르게 북소리를 함께 즐기고 느낄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늙은 민 노인 세대가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피의 세대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화합이 이루어지고 자신만이 즐기던 북소리가 아들과의 관계처럼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구나 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었다. 민성규의 두 번째 노력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다. 이는 민 노인과 민익태로 이어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이 지속된다는 면도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행동과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할아버지와 아들의 화해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는 긍정적 의미도 지닌다. 아들은 누군가가 합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표현할 기회를 마땅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민성규는 아버지가 더 많은 세월을 살아 온 할아버지보다도 더욱더 패배주의에 빠져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아버지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을 뺏는 것은 할아버지의 한(恨)을 배가 시키고 생의 마지막 의지를 짓밟는 것이라는 점을 아버지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민성규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부족한 면을 보인다. 과거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다면 그건 아버지의 몫이지 저와는 상관 없는 겁니다. 오히려 전 세대의 갈등이 다음 세대에서 쾌적한 만남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환영한 만한 일이고, 그게 또 역사의 의미 아니겠습니까?’와 ‘북으로 상징되는 할아버지의 삶을 놓고 아버지와 제가 감정적으로 갈라서는 걸 비극의 차원에서 파악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의 말처럼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예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만남은 예술을 단절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민익태 역시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허물없이 아들에게 말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네가 알긴 뭘 알아, 네가 내속을 어떻게 알아’의 말처럼 단지 아들이 스스로 자신을 알아주길 원하며, 그렇지 않은 아들에게 원망만 한다. 또한 데모로 잡혀간 아들을 보면서 역마살로 유랑했던 아버지를 보는 시각과 동일하게 아들 세대의 아픔이나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 보다는 오직 잘못된 세대 즉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과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민 노인의 이름이 작품에서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에서 과거의 것은 형식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와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대 간의 단절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연결 고리가 필요하며, 민 노인과 손자 민성규 사이에는 ‘북’이 존재하지만 민익태와 아들 민성규 사이에는 그러한 고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민 노인과 민익태와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그리고 손녀 민수경과 민 노인의 관계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북을 치고 있는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이 북을 팝송 연주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말을 건다. 이 역시 ‘북 때문에 할아버지와 손녀가 하나로 이어진다. ‘북’ 때문에 과거의 모든 것이 부정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때문에 현재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즉 둘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세대 간의 화해는 사소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 세대들이 북소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80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역시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민 노인은 80년대 이전을 대표하는 인물, 민익태는 80년대 이전과 80년대에 걸쳐있는 인물, 민성규는 80년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민익태는 갑작스러운 시대의 변하에 인해서 가치판단의 혼란을 느낀다. 사회의 변화는 삶의 양식부터 사람들의 생각까지 변화 시킨다. 집단의 화합보다는 개인의 성공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은 낡은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자식들도 자신들처럼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민성규는 80년대에 태어나 도시화와 산업화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활에 여유가 있으며, 가치판단에서도 생각의 폭이 넓다. 이에 할아버지세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