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성만찬의 문화적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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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예배와 성만찬의
문화적 접목
Ⅰ. 들어가는 말
오늘 날 한국 교회의 성만찬은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2부 순서내지 예배 후 곁들여 드리는 예배순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성만찬은 그렇게 치부될 수 있는 간단한 예식에 불과한가? 아니다. 성만찬은 우리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이며, 예배의 핵심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다. 그렇다면 예배와 성만찬의 관계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성만찬의 예배의 관계 속에서 현대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간략하게 총 다섯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이다.
Ⅱ. 성만찬의 현대적 의미
1) 성부께 대한 감사로서의 성만찬(The Eucharist as Thanking to the Father)
성만찬의 성례전은 어떤 신학적 의미보다 구속의 위대한 사역을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대해서 뜨거운 감격을 필요로 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구속의 사랑 때문이다.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미래 교회와 세계 속에서 이룩하시는 모든 일과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시려고 장차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모든 일들을 두고도 감사드린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부터 성만찬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험하는 데에 기독교는 최우선적인 신학적 관심을 두어 왔던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물을 드리는 봉헌에서부터 이런 신앙적 행위가 시작되었으며 2C 중반의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주님의 만찬을 대할 때마다 죄로 물들었던 자들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 주신 은총 앞에 먼저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을 명령한 바가 있다. 이러한 사상은 웨슬리에 와서도 성만찬을 가장 중요한 ‘은총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감사의 예번으로서의 성만찬이 이룩되어야 한다는 점은 오늘의 신학자들에게도 최우선적으로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2) 그리스도의 기념으로서의 성만찬(The Eucharist as Anamnesis or Memorial of Christ)
이것은 개신교에 의해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단순한 기념설로서의 성만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희생을 회상하고 그 부활의 승리와 귀하신 교훈을 되새기는 성례전으로서의 성만찬을 강조하는 것이다. 웨슬리도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을 다만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회상함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되새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삶과 부활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하는 자”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항상 맺어 주는 기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맥 더리안에 의하면 이 회상은 유대 민족이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현재적 역사하심을 재 경험하는 유월절 식탁(paschal meal)과 같은 성격의 성만찬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회상이란 원래 히브리 민족의 사상에서 단순한 기념적 의미만을 갖지 않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결과를 현재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을 뜻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오늘의 단순한 기념적 행위로서의 성만찬 거행이 아닌 좀 더 진지하고 섬세한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요구받게 된다.
3) 성령의 초대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Invocation of the Spirit)
그리스도의 현존은 분명히 성찬의 핵심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임재하게 하심으로써 성찬 제정의 말씀 가운데 포함된 약속을 성취시키신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이 성례에도 신앙적 응답의 능력이 있다고 보았고 이 성례를 “회심케 하고”(converting) 또 “확신케 하는”(confirming) 규례로 보았다. 따라서 성례전은 모든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참된 임재를 위하여 성부께 기도하여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것이다. 성찬 제정의 말씀에 들어 있는 예수님의 현존 약속에 힘입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되는 성령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성부께 비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성만찬 현장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뵙는 신앙적 경험을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례전이란 “주님이 제정하신 희생의 제사요 은총이기에 우리는 기도 가운데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은 성례전 속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라는 나다니엘 미클렘(Nathaniel Michlem)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4)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Communion of the Faithful)
성만찬의 본질 중 중요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그 지체를 이룬 무리들이 동일한 신앙 속에서 삶의 내용과 방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즉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의 결정체를 이룩하는 특수한 공동체가 형성되진다는 것이 바로 성만찬의 독특한 면이라 하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이상 온갖 종류의 불의와 인종 차별과 분리 정책과 자유의 제한을 철저히 물리쳐야하며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은 성찬을 통하여 인간의 인격과 품위에 속속들이 작용하고 그것을 회복시킨다. 우리 사회의 온갖 불의한 관계들 아집으로 인해 생기는 무수한 분열 현상들 배금 사상과 폭력 정치의 비리들 특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일고 있는 도저히 정당화 할 수 없는 교파싸움이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으니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세계 어디서나 성만찬의 성례전을 체험하는 무리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는 위대한 역사가 진행되어야 하며 모인 무리들은 모두 한 하나님, 한 주님, 하나의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동일한 지체임을 계속적으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한다. 웨슬리도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성도는 하나의 지체의식을 가지고 되고 교제(fellowship)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5) 하나님 나라의 식사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Meal of the Kingdom)
성만찬은 창조물의 궁극적인 갱신으로서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미리 맛보게 한다. 이러한 갱신의 표징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곳마다 이 세상 어디에고 존재한다. 성찬은 교회가 이러한 표징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잔치이다. 또한 성만찬은 교회나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과 더불어 있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경축하고 성취하는 잔치이기도 하다.(고전 11:26, 마 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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