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와 가톨릭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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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재세례파와 가톨릭 종교개혁
재세례파
재세례파는 루터, 츠빙글리, 칼뱅과 같은 주류 종교개혁자들보다 철저하고 급진적인 개혁들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들을 급진적 종교개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윌리엄스는 이들을 재세례파, 영성주의자들, 복음적 합리주의자들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재세례파는 다시 혁명적 재세례파, 명상적 재세례파, 복음적 재세례파로 나누었다.
재세례파는 소박한 삶의 양식을 회복하고자 하고, 성서에 근본적으로 충실하고자 하고, 훈련된 제자의 삶을 강조하고, 유아세례를 부인하며 스스로의 의지로 결단할 수 있는 성인들의 세례를 주장하고, 국가 종교에 반대했다. 이들은 급진적이었으며 동시에 근본적이었다.
최초의 재세례파는 평화주의와 평등주의에 기초한 사람들로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등장하였다. 처음에 츠빙글리와 함께 교회개혁에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는 다른 길을 택하였다. 펠릭스 만츠와 콘라트 그레벨을 위시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츠빙글리가 추구하는 내용과 속도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관습이 성서에 근거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오직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성인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펠릭스 만츠는 자신의 집에서 주간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스위스 형제단’이 생기게 되었다.
1525년 1월 21일 블라우록이 그레벨에게 참된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하여 두 번째 세례를 받은 후, 그 자신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때부터 재세례파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그들은 유아세례는 참된 세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받은 세례는 재세례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재세례를 시행하는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따라서 이들은 신학적 이유와 동시에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재세례파 운동은 점점 과격한 양상을 띠게 되고 마침내 혁명적 재세례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호프만은 스트라스부르에, 얀 마티스와 라이덴의 얀은 뮌스터에 천년왕국인 새 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뮌스터에서는 전쟁의 와중에 남자들이 부족해지자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실시하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후에 메노 시몬스의 이름을 따라 메노나이트라고 불리게 되는 복음적 재세례파가 등장하여 평화주의, 세족식, 성경에 배치되지 않는 한 국가에 복종, 군복무 거부, 사회봉사 등으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주류 개혁자들은 유아세례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징표로 보았기 때문에 유아세례의 관습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두 번째는 재세례파 사람들에게 교회는 의로운 자들의 모임 혹은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여야 했다. 그러나 주류 개혁자들에게 가시적인 교회란 성도들만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성도들과 죄인들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재세레파 사람들은 초대 시기의 사도적인 교회가 타락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부터 시작된 국가와의 결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종교개혁자들은 재세례파의 분리주의를 논박하면서 국가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보통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분류를 하지만 재세례파라는 이유로 모두 이단으로 분류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들 역시 성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가는 종교개혁자들이다. 얀 마티스가 뮌스터 시에서 저지른 사건 등 용납하기 힘든 사건들을 제외하고 아주 복음적인 운동도 많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왜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을까. 그들은 주류 종교개혁자들이 정부와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며 큰 실망을 했다. 그들은 철저히 성서 중심으로 개혁하고자 원했다.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반작용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성서 중심으로 개혁을 추구하던 그들의 모습에는 성서적이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재세례파는 세상과 정부를 악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성서는 악으로 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요한복음 말씀에서 잘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악한 것으로 보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재세례파는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성서를 보았다.
참고문헌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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