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

 1  [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1
 2  [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2
 3  [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3
 4  [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현대사]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2. 한국전쟁 시기의 조중관계
한국 전쟁기 조중관계는 반목 그 자체이다. 전쟁 준비기 사전협의, 군사정보전달, 작전통수권, 38선 돌파문제, 철도관리, 포로송환 등 폭넓은 부분에서 북한과 중국은 견해 차이를 보이며 갈등하였다.
김일성은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 측과 전쟁에 관한 의논을 지속하였다. 1950년 4월 10일부터 25일까지 북한지도부와 소련지도부 사이에 진행된 3차례의 회담에서 북한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전쟁한다고 결정했다. 초기 결정에서 중국 의견은 제외되었지만, 5월 13일에 김일성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마오쩌둥에게 통보를 해주었다. 다음 날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북한을 지원할 것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내어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확인시켰다. 마오쩌둥은 북한을 직접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김일성에게 보였지만, 김일성은 정중히 거절한다.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으로도 충분하며 단지 중국은 중국 동북군에 속해 있는 조선인 병사들만 돌려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김일성은 베이징을 떠난 후 마오쩌둥과 더 이상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전쟁 시작 시간도 중국 측에 통보하지 않았고 마오쩌둥은 외국신문을 통해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했다. 양진삼, 〈전쟁기 중국지도부와 북한지도부 사이의 모순과 갈등〉, 《한국전쟁사의 새로운 연구》 2, 서울: 국방부, 2002, p. 579.
북한이 중국의 원조를 받는 것을 꺼려했지만, 중국은 동북지역 안보를 위해서는 북한을 꼭 지켜야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으며 북한 측을 원조해주려 하였다. 중국은 북한이 전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던 1950년 7월 초경에 이미 중국의 9개 사단을 동원해 북한과의 국경선 사이에 배치하였고, 적군이 38선을 넘을 때 북한을 직접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참고문헌
양진삼, 〈전쟁기 중국지도부와 북한지도부 사이의 모순과 갈등〉, 《한국전쟁사의 새로운 연구》 2, 서울: 국방부, 2002
이종석, 〈한국전쟁과 북한-중국관계 I〉, 《전략연구》 15, 한국전략문제연구소, 1999
〈한국전쟁과 북한-중국관계 II〉, 《전략연구》 16, 한국전략문제연구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