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자료
[한국문화] 근대화가 이쾌대와 아내 유갑봉의 사랑 -2인초상
[한국문화사] 이쾌대에 대해서
작품 `운명`으로 본 이쾌대
이쾌대의 ‘무희의 휴식’
[북한의 미술, 북한의 영화, 북한의 의생활, 북한의 여가생활, 북한의 교육, 북한의 종교, 북한의 체육, 북한의 화폐] 북한의 미술, 북한의 영화, 북한의 의생활, 북한의 여가생활, 북한의 교육, 북한의 종교, 북한의 체육, 북한의 화폐 분석
중국 사회와 냉소적 리얼리즘 -유에 민준과 장 샤오강의 작품들을 비교, 분석
20세기의 얼굴 레포트
한국 근·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북한, 북한의 미술, 북한의 종교, 북한의 체육, 북한의 의료제도, 북한의 온천, 북한의 약수터, 북한의 풍산개] 북한의 미술, 북한의 종교, 북한의 체육, 북한의 의료제도, 북한의 온천과 약수터, 북한의 풍산개에 관한 분석
[국어국문 ]90년대 통신유머 연구
소개글
[한국문화] 이쾌대의 군상도-4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이쾌대는 누구인가
2. 가 있기까지의 행적
3.
4. 군상도에 나타난 주요 표현기법
5. 마치며
본문내용
1. 이쾌대는 누구인가
‘이쾌대’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나도 이쾌대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하기 전까진, 그가 누구이며 어떠한 활동을 한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해금 화가’였다. 즉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가 1988년, 40년 만에야 해금을 맞은 화가였다. 이를테면 시인 백석이 남한에서 푸대접 받아온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쨌거나 해금이 된 후 이쾌대는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대단하긴 대단했던 모양이다. 최열(미술 평론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원)은 이쾌대를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했다. 어떤 기법이나 양식이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유화물감이라는 생소한 재료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세기 이후였다. 새로운 미술새내기들(최초의 서양화가들, 첫 유럽 유학생들)은 유화물감이라는 재료를 받아들였지만 그 성과는 썩 좋다고 할 수 만은 없었다. 그도 그럴 듯이, 그저 유화물감이라는 재료는 단순히 그림의 재료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서양 미술의 오랜 감성과 깊이가 담긴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쾌대는 그것도 잘 수용했고, 가장 뛰어난 서양화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이쾌대’, 김진송 지음
‘예술컬럼’ 이석우(경희대 교수, 서양 사학) 지음
‘나를 사로 잡은 그녀, 그녀들’ 함정임 지음
‘문학 세계’ 20세기 전반기 미술가들 최열 기고
선구상미술학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