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과학] 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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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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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신학 개관
Ⅱ. 교회론
Ⅲ. 예정론
Ⅳ. 성경
Ⅴ. 과학의 본질
Ⅵ. 과학과 성경
Ⅶ. 과학기술문화와 생명에 관한 신학적 논의
Ⅷ. 민중신학의 새로운 주제로서 경제와 커뮤니케이션
본문내용
학문이론 일반적인 것은 이미 피히테를 비롯해서 독일 관념주의 철학에 의해 제기된 이후, 이 문제는 영미 분석 철학의 성립과 더불어서 보다 강하게 주장되었다. 그들은 학을 자연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재구성하고자 했고, 학적인 진술의 의미는 오로지 검증 가능한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학의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하는 신학은 말할 것도 없이 전설이나 신화 혹은 환상으로까지 치부되어졌다. 엄밀하게 보자면 독일 대학신학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신학은 자신들의 노력이 학문적인가 라는 위의 질문 앞에서 자신의 실존적인 대답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여하튼 독일 대학신학은 이런 질문과 더불어서 대학신학에 걸 맞는 신학구성을 위해서 노력했다.
신학의 학문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대학신학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논의는 하인리히 숄쯔(Heinrich Scholz)가 카알 바르트(K. Barth)에게 던진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겠다. 숄쯔는 "신학이 어떻게 학으로써 가능한가?(Wie ist eine evangelische Theologie als Wissenschaft moglich?)"란 글 속에서 신학이 학문이 되기 위한 신학인식의 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신학의 논쟁은 주로 신학적 진술의 진리성을 두고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을 간단히 표현한다면 다음의 질문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 어떻게 진리일 수 있는가?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러한 신학의 학문성을 묻는 논의는 특별히 본 대학 신학자 게르하르트 자우터(G. Sauter)와 뮨헨 대 신학자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 Pannenberg)와의 대립된 입장 정리로 일단 논의가 중단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는 대학신학이 신학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신학 외부, 특히 자연과학과 철학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팀의 문제제기는 신학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졌다는 데에 또다시 그 독특성을 갖는다고 보겠다. 학문논의의 맥락에서 말한다면 팀은 신학자로서, 그것도 팀의 주장은 겉보기에는 대학신학의 학과목 변경이나 개설 등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신학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신학의 근거에 대한 도전에 해당된다. 팀이 요구하는 철학적 윤리나 종교간의 대화로 신학의 주제가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크게 놀랄만한 새로운 일이 아니다. 모든 학문들은 지금 복수주의적인 현상들을 학문적으로 해명하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신학 속에서 이런 모든 분야가 거론될 수 있고 또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신학이 풍부하게 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은 신학 이외의 학문들이 발견의 맥락으로써 이해되어질 때 그렇다.
이러한 사실을 독일에서는 학과간의 대화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미 경험을 했다. 그러나 팀의 주장은 현대사상의 흐름이 이미 신학적인 근거(신앙 고백의 내용)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신학적 진술이 더 이상 고백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 기준에 의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당화의 맥락이 이성적 합리성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의미에 있어서 단순한 주제의 확장이 아니라 신학의 근거가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신학부는 대학신학으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의 이런 주장은 뮨헨 대학 교수로서 은퇴중인 판넨베르크의 이론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