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과 리더십] 김영삼대통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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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행정과 리더십] 김영삼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1. 연구목적
2. 성장과정

II. 김영삼 대통령의 정책활동과 리더십 유형
1. 사회 ․ 경제적 정책
2. 정치개혁
3. 대북정책
4. 외교정책

III. 김영삼 대통령의 리더십 평가

IV. 결론

V.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성장과정
김영삼은 1928년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도의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 김시흥을 시조로 하는 김녕 김씨 충정공파 28세손이며, 그의 10대조 김진원이 200여년전 충청북도 진천에서 거제로 이주했다고 한다. 김영삼에 대한 기록에 상당히 자세히 나와 있으며 이를 보더라도 그 자신이 가문에 대한 긍지를 느꼈음을 알 수 있다. 또 섬에서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가문에 대한 자긍심까지 가졌다는 사실이 그의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쉽게 짐작되는 부분이다. 김영삼의 조부 김동옥의 손자녀 가운데 김영삼과 사촌동생 뿐이었으며, 그는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연의 맏이이고 아래로 여동생만 다섯이었다. 당시의 가치기준으로 미루어 김영삼이 얼마나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자랐을 것인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다. 이런 김영삼의 가족사는 이후 김영삼의 리더십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준거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김영삼은 다섯 살 때 부유층의 성장 과정처럼 동네 서당에 다녔으며 중학교 때 일본인 40명 한구인 20명 중 키순으로 29번이었다. 당시 씨름은 언제나 1,2등이었고, 수영에서는 중학생으로서 최고 수준인 3급을 땄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언행과 저돌성 등의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대표적 제시가 있는데, 당시 조선어 시간표가 사라지고, 조선어 사용 금지령에 이어 창씨 개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김영삼의 저항은 통영중학 2학년 때 한국인을 멸시하고 아이들이 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면 빼앗아서 내던져 버리곤 하던 일본인 교장에게 앙갚음을 했다거나, 한국 학생들을 멸시하던 일본인 반장을 두들겨 패주고 정학처분을 받기도 하였고, 정학은 행방이 되는 바람에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리고 당시 문학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할아버지를 졸라 일본어판 세계문학전집을 몽땅 샀다고 한다. 또 셰익스피어 전집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저학년 학생이 책을 읽고 싶다고 전집을 한꺼번에 샀다는 것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고, 또 문학전집을 한 질을 샀다는 점에서 상당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김영삼은 통영중학 시절 학생들에게 인정스럽게 대했던 와타나베 선생과 정부수립 이후 에도 연락을 계속하게 된다. 3대 국회 때에는 통영중학 동창들과 와타나베 선생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국내 여행을 시켜주고 또 대통령 재임 시에 이미 고인이 된 와타나베의 아들 내외의 두 딸을 청와대로 초청했고, 오사카에서 열린 APEC에 참석했을 때 이들을 다시 만났다. 또 자신의 담임이었으며 역사를 가르친 우루시마 선생에 대해서도 좋은 기억을 갖고 있고 퇴임 후 회고록을 쓰던 중에 우루시마 딸 내외를 상도동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 자신은 일제와 일본인을 구분해서 봤다고 하나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해서도 그가 특별히 반감을 갖고 저항의식을 드러내 보인 적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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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장기집권과 독재권력에 편승한 리더십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구비되었으나 새로운 리더십의 행태를 보여주지 못했던 최고정치지도자의 리더십 연구는 문민정부라 자처했던 김영삼 정권을 통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구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김영삼 정권에 대한 리더십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최고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지도자 본인의 자질과 그 사회의 정치문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석해 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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