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 난] [안록산의 난] 안사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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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사 난] [안록산의 난] 안사의 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안록산과 양귀? 그리고 현종

2. 안사의 난의 원인 및 그 사회적 배경

3. 안사의 난의 전개과정

4. 안사의 난의 사회, 경제적 영향

5. 안사의 난이 혁명이 되지못한 이유
본문내용
1. 안록산과 양귀비, 그리고 현종

천보 4년(755) 안록산(安祿山)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일찍이 안록산은 천보 원년(742) 새로 설치된 평로 절도사가 되고 같은 3년에 범양(范陽) 절도사를 겸하였다. 안록산은 체중이 230근(약 200kg, 우리나라의 근과 다름)이나 되는 보기 드문 뚱뚱보로 그의 뚱뚱한 배는 무릎을 덮을 정도였다 한다. 양귀비는 이같은 안록산이 마음에 들었다. 익살스럽고 털털하며 모나지 않고 수수한 그의 성격을 바탕으로 안록산은 손쉽게 현종과 양귀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록산은 양귀비의 수양아들이 되고 싶다고 자청하여 입궐하면 먼저 양귀비에게 인사를 올리고 다음에 현종을 배알하였다. 그 후 안록산은 수시로 군중에 출입하였으며 때로는 한 밤을 궁중에서 지새워 물러가지 않은 일이 있어 양귀비와의 추문이 널리 세상에 퍼졌건만 현종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다시 안록산에게 하동(河東) 절도사를 겸하게 하였다. 현종은 장안에 호화로운 주택을 지어 안록산에게 주는 등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록산이 모반을 일으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현종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고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잇달아 들어오는 안록산의 반란보고를 들은 현종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황한 현종이 수도 장안을 수비할 병력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으나 전투를 할 만한 군사는 전무한 상태였다. 그 때 세상은 바야흐로 수 십 년 동안 태평 세월을 누려왔기 때문에 아무 방비가 없이 안록산의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을 계속하여 낙양을 함락시켰다. 낙양을 함락시켰다고 하지만 안록산의 반란군은 인심을 얻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각 지방이 아무 방비가 없었기 때문에 안록산의 반란군이 마음대로 진격할 수 있었으나 후에는 이곳 저곳에서 백성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반란군의 진격을 저지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장안을 지키는 동쪽의 요충지 동관은 모두 안록산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현종은 친위군에게 출진 준비를 명하긴 하였으나 안록산의 반란군과 싸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밤이 새자 현종은 연추문을 열어젖히고 양귀비와 그의 자매, 황족, 측근,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무장한 천명의 친위군이 이들을 호위하여 서남쪽 촉 땅으로 향했다. 수행하던 장병들은 굶주리고 피로에 지쳐 지금까지 꾹 참아오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들은 한결같이'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재상 양국충의 잘못 때문이다'라고 분개하여 양국충의 목을 베고 이어 현종의 거처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소리높여 '양귀비를 주벌하라'고 외쳐댔다.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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