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조선통신사의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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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사] 조선통신사의 파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조선)통신사(通信使)'란 무엇인가?
·통신사 파견의 절차와 편성 및 여정
·통신사 파견의 목적과 활동
·통신사의 의의
본문내용
·들어가는 말
한·일 양국은 각자가 지닌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교류를 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교류를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선시대에 파견했던 통신사이다. 통신사는 수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며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통신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통신사(通信使)'란 무엇인가?
통신사의 명칭은 조선시대에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고려사절요'를 보면, 1375년 일본의 무로마치(室町) 막부에게 왜구금지 요청을 하기 위하여 관리 나흥유(羅興儒)를 파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에게 파견하였던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말한다.
조선 건국 후 태종 1403년(태종3)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 정권(足利政權)도 책봉을 받아 조선·중국·일본간에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때 조선·일본 두 나라는 대등한 처지의 교린 정책으로 조선국왕과 일본 막부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권자로서 현안문제 해결을 위하여 양국의 사절을 파견하였는데, 이때 조선이 일본에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일본이 조선에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이때, 통신(通信)이라는 용어는 외교관계를 가지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신의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모든 사절이 통신사의 명칭을 띠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에는 일본과의 사절 왕래가 많아 조선 국왕사의 일본 파견이 61회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조선사절은 회례사(回禮使)·회례관(回禮官)·보빙사(報聘使)·경차관(敬差官)·통신사(通信使)·통신관(通信官) 등 그 명칭이 다양하였다. 이들 모두가 조선국왕의 명에 의하여 서계(書契-국서)와 예물을 지참하고 일본에 가서 막부장군을 접견하였고, 형식에 있어서는 막부도 이들을 국왕사로 접대하는 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파견되는 계기나 편성·호칭내용에 있어서 모두 일괄적으로 통신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에 통신사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에 편성된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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