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고대사] 7세기신라민의재편과정

 1  [논문요약][고대사] 7세기신라민의재편과정-1
 2  [논문요약][고대사] 7세기신라민의재편과정-2
 3  [논문요약][고대사] 7세기신라민의재편과정-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논문요약][고대사] 7세기신라민의재편과정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읍락공동체의 해체와 민의 분화
Ⅲ. 신라 중고왕권의 강화와 공민화의 진전
Ⅳ. 7세기 전쟁과 민의 재편
Ⅴ.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6세기 삼국의 격렬한 영토 쟁탈전은 7세기에 이르러 백제가 신라에 통합되고, 고구려는 멸망하여 발해가 건국되는 한반도 전역의 큰 사회변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변동은 피지배층인 민의 성장과 그 민을 견인하여 새로운 통치체제를 수립하려는 지배층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개된 것이다. 본고는 그러한 민의 역사적 지위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읍락공동체의 해체와 民의 분화

초기 신라 사회의 운영원리로써 존재하였던 공동체적 질서는 4~6세기 농업생산력의 발달로 인하여 서서히 해체되어 갔는데, 이 시기 농업생산력 발달의 혜택을 누린 계층은 읍락공동체의 호민(원래는 씨족장적 성격을 가지는데, 6세기 이후에는 부유한 농민을 뜻함)이나 일정한 사유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던 민이다. 에서 7세기 중엽 진정법사가 너무 가난하여 용작을 통해 어미를 봉양했다는 것을 볼 때, 철제농기구나 우경 등의 생산수단을 소유하는데 실패한 당시 일반민들은 국가가 흡수하지 않으면, 호민화한 민에게 고용되어 용작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민의 분화는 읍락공동체 해체를 더욱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에서 7왕이 절거리와 말추, 사신지의 소유권 분쟁에 대해 개입하는 것을 볼 때, 공동체 내부의 분쟁을 그들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고 국가권력의 힘을 빌어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은, 읍락사회의 공동체적 질서가 해체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위제(外位制)는 지방 유력자들을 중앙지배체제내로 편제하기 위한 관등제인데, 외위를 소지한 지방인이 전쟁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왕경인들이 독점하였던 전리품의 획득이 지방인에게 확대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에서 사다함이 왕에게 하사받은 田을 전사들에게 나누어줬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민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통한 전리품의 분배가 이루어졌으며 전반적인 민의 지위가 상승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에 나오는 가실은 전쟁을 통해 토지를 얻은 전사와 같은 부류인데, 일반민은 전쟁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인 토지를 획득하여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을 통한 민의 지위 향상은 국가기반의 확립으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