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과 낙안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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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읍성과 낙안읍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읍성의 발전과정
3) 삼문
2. 읍성의 지리적 조건
3) 향청, 작청, 관청
3. 읍성의 구조
4, 낙안읍성
1) 동헌과 내아
2) 객사
5. 낙안읍성 구조물
1) 동헌 및 내아
2) 쌍청루와 낙추문 그리고 낙풍루

본문내용
3. 읍성의 구조

읍성 안에는 고을의 기본적인 건물들이 있기 마련인데 관아와 객사, 관원과 백성들의 집, 시자오가 여인숙 등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향교가 읍성안에 있기도 했다. 관원들이 정무를 보는 건물을 한데 묶어 ‘관아’ 또는 ‘공해’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마을이라고도 했다. 고을의 등급은 현, 군 , 도호부, 목 , 부 , 도 의 순서에 의해 높아졌고, 인구도 많아졋으며 관아도 커졌다. 현 단위의 읍성 안에는 백성들의 기와집이 거의 없었고 조선 후기의 읍성 사진들을 보면, 관아 말고는 거의 초가집이다. 넓은 농토를 가진 양반들은 읍성 바깥에 자신의 농토 가까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양지바르고 경치도 좋은 배산임수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에 살았다. 읍성 안에는 큰 기와집을 지을 만한 자리를 구하기 힘들었고 수령과 충돌할수도 있었다. 읍성 안에는 동헌, 객사 등의 기본적인 관아가 있었는데, 고을의 등급에 따라 종류가 더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동문과 서문을 이어 주는 큰길이 가운데 있었고, 그 위쪽에는 관아가, 아래쪽에는 시장가 민가가 있었다. 지형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했지만 큰길 위쪽에 관아가 배치되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1) 동헌과 내아
동헌은 지방 관아의 정무가 행해지던 중심 건물이다. 관찰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이빡에 수령의 정청으로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이 모두 이곳에서 행햐졌다. 동쪽에 있는 행정청이라는 의미에서 동헌이라고 하였으며 수령의 살림채인 내아는 ‘서헌’이라고 하였다. 동헌과 내아는 담이나 행랑으로 격리되어 있었고, 가운데 협문으로 통하였다. 조선후기 동헌들은 대개 3,4층의 석축위에 정면 6.7칸, 측면 4칸의 목조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장중한 분위기를 지녔다. 가운데 3칸은 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만들었으며, 앞에 툇마루를 꾸몄다. 정면에는 ‘당’이나 '헌‘ 등의 편액을 걸었는데 ’교화를 베푼다‘는 뜻의 ’선화당‘이 가장 많았다. 내아는 수령 가족의 생활 공간이므로 사대부 집안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하였다.

2) 객사
객사는 사신이나 출장 관원들이 머물던 숙소인데, 객관이라고도 하였다.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로 만든 익실을 두고 앞에는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었다. 객사에는 전패를 안치하고 수령을 비롯한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바라보며 절하였다. 이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가 있었기 대문인데 이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 중요한 건물이기도 하였
참고문헌
허경진 『한국의 읍성』대원사, 2001
반영환 『한국의 성곽』대원사, 1991
김동욱 『조선시대 건축의 이해』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이기봉 『낙안읍성의 입지와 구조 그리고 경관』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 14권 1호, 2008
고석규『조선초기 서남해안 지방 읍성의 축조와 도시화 요소, 2005
이전 『사천만 연안에 축성된 성의 유형과 기능에 관한 역사지리적 연구』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6권 제1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