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조선전기의 역사인식과 동국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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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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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조선전기의 역사인식과 동국통감
Ⅰ. 머리말
Ⅱ. 조선전기의 역사인식
Ⅲ. 동국통감
Ⅳ. 맺는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시대에는 고려말기 이래의 성리학적 역사서술의 전통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면서 그 안에서 근대 역사학의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편사정신(編史精神)은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여 그 응용학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거울로 하여 정치적 교훈을 얻고자 하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두었다. 성리학은 윤리․도덕 질서의 확립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면서도 합리적인 우주관과 민본적(民本的) 정치관 등을 담고 있어서 이에 기초를 둔 역사서술과 역사인식은 상대적인 진보성과 과학성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조선시대 역사학의 발전을 촉진한 또 하나의 요인은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으로 이어지는 국난(國難)을 경험하면서 민족적인 자아의식(自我意識)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이후로 역사학은 점차 경학(經學)인 성리학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전문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임과 동시에 역사서술의 고증적 방법이 심화하고 역사주체를 넓혀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조선후기 사학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근대 역사학을 향하여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여 그것이 개항 이후 새롭게 수용된 근대 서양의 역사학과 접목되어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을 수립하는 모체가 된 것이다. 여기서는 조선전기의 歷史認識과 東國通鑑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하겠다.

Ⅱ. 조선전기의 歷史認識

태조에서 성종으로 이르는 15세기에는 고려시대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통치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국가의 통치철학을 담은 다양한 사서(史書)들이 관찬(官撰), 즉 국가사업으로 편찬되었다. 가장 먼저 착수된 것은 고려시대의 역사의 정리였다. 바로 앞선 시대에 대한 정리가 없이는 새로운 질서의 방향 설정이 곤란하고 새 질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高麗史』와『高麗史節要』 는 고려 전기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무신란(武臣亂) 이후의 고려말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조선왕조 건국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고려 말기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안으로는 도덕질서의 붕괴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권신(權臣)의 발호에 의한 왕권의 추락과 군주의 사치․방탕 등 때문이다
참고문헌
1. 신형식,《한국사학사연구》, 한국사연구회, 1986

2. 한영우,《조선전기사학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사, 1955

3. 조경걸 외,《한국의역사가와 역사학》, 창작과비평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