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이종욱, 신라 `부체제설` 에 대한 비판 - 하나의 새로운 신라사체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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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이종욱, 신라 `부체제설` 에 대한 비판 - 하나의 새로운 신라사체계를 위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필자는 『三國史記』 祗摩王 즉위조의 기록을 통하여 婆娑王이 嫡子를 太子로 삼았던 사실과 許婁를 伊湌보다 위의 位인 酒多로 삼았던 사실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왕이 6부의 세력들을 장악하였고 정치적으로 적어도 한 단계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의 사료만으로는 파사왕이 6부 중 또 다른 부의 세력이 아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다음의 사료를 보기로 한다.

(婆娑王) 23년 (중략) 이때에 王이 6部 에 명하여 함께 수로왕을 맞게 하였다. 5部는 伊湌으로 주인을 삼았는데 오직 漢祇部만은 위가 낮은 자로 맞게 하였다. (하략) (『三國史記』1, 新羅本紀 1, 婆娑尼師今 23년)

婆娑王이 6부에 명하여 首露를 위한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파사왕은 부를 다스리던 部主가 아니라 6부로 구성된 왕경 전체를 통치하던 정치적 지배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파사왕은 6부의 부주를 제후적인 존재로 삼아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하는 통치를 하였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部主들이 다스리던 6부는 어디까지나 왕의 명령을 받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던 왕경의 행정단위에 불과하였다.
『三國遺事』에 나오는 新羅始祖 赫居世王조를 보면, 6부의 祖들이

‘우리는 위로 君主가 없어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君主로 삼고 立邦設都 하지 않겠는가’ (『三國遺事』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