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

 1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1
 2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2
 3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3
 4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4
 5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5
 6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6
 7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7
 8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8
 9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9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지역학] 지역분쟁-체첸 Chechen 공화국, 러시아 분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체첸 Chechen 공화국
2. 분쟁의 원인
3. * 1차 분쟁 (1994~1996)*
4. * 2차 분쟁(1999~현재) *
5. 아프마드 카디로프
6. 체첸 역사의 흐름
7. 러시아 정부의 입장
8. 결론
본문내용
♠ 언어 튀르크어계의 체첸-잉귀쉬어
♠ 역사
체첸과 잉귀쉬 두 민족은 모두 카프카즈 인종이며 같은 나흐족(Nakh) 일파로 7세기경 동시에 이 지역에 나타났고 그 후 10여 세기 동안 함께 이 지역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 제정 러시아에 강제로 편입됨으로써 러시아인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갖고 살아왔다. 18세기 말 팽창정책을 폈던 러시아가 카프카즈 정복에 나섰을 때 이들 산악민족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카프카즈 전쟁은 거의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었는데 1859년에 이르러서야 결말을 맺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러시아군이 승리하긴 했으나 당시 유럽 최강을 자랑했던 러시아 육군은 수차례에 걸쳐 격퇴되는 곤경에 처하고, 막대한 희생과 전쟁비용을 소모했다. 이 전쟁 당시 동부에 거주하던 나흐족은 러시아에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의 나흐족은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 후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두집단의 거주지역 중 큰 도시의 이름을 따라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잉구쉬'라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도 체첸 민족과 러시아간에는 치열한 갈등이 있었다.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한 체첸인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성전(聖戰)으로 규정하고 전투적인 이슬람 교단을 중심으로 해방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10월 혁명과 내전시기에는 한때 인접한 다게스탄 지역에 이슬람국가인 '다게스탄 체첸 회교국'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1921년 소련군이 이들을 완전히 정복함으로써 구 소련의 일부가 되었다. 혁명 후 레닌은 제정 러시아에 의해 짓밟혀 왔던 체첸의 굴종적 역사를 상기하여 '러시아 내 이슬람교도'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체첸인을 비롯한 모든 이슬람교도들의 권리를 보장했었다. 그후 1936년에 이르러 체첸-잉구쉬 두 자치구가 합병하여 체첸잉구쉬 자치공화국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의 스탈린베리야의 숙청바람으로 1937년 여름부터 1938년까지 체첸-잉구쉬 자치 공화국을 포함한 북 카프카즈 전역에서 지식인과 지방당 간부들이 총 10만 명이 체포되어 일부는 처형되고 나머지는 타지역으로 강제 추방되는 비운을 겪었다.
1940년 초 체첸인과 잉구쉬인들은 하산 이스라일로프(Khassan Israilov)의 지휘로 구 소련 정부에 다시 저항했으나 1942년 말에 진압되고 말았다. 체첸인에 대한 러시아의 박해는 제2차대전 말기 또 다시 전개되었다. 당시 스탈린의 소련당국은 이 지역을 일시 점령했던 독일군에게 체첸인들이 협력했다는 의심 하에 1944년 2월 체첸-잉구쉬인 거의 전체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강제이주 대열에서 도망친 소수 사람들은 카프카즈 산악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으로 소련군을 괴롭혔고, 강제이주와 게릴라 투쟁 과정에서 약 23만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소련 당국의 민족 말살정책에 대항하고 체첸-잉구쉬인의 연대감을 북돋우며 고향으로의 귀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수피 타리카스(Tariqas; brotherhoods)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의 노력과 흐루시초프의 개혁노선에 힘입어 1957년 체첸민족은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고 고향으로의 귀환이 허용되었으며 자치공화국으로 부활되었다.
그후 소련이 붕괴해가는 와중에서 1991년 10월 조하르 두다예프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체첸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잉귀쉬 역시 1992년 10월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더 나아가 이 두 공화국은 1993년 12월 채택된 러시아 연방헌법에 의해 각각 신생 러시아연방의 구성공화국으로 공식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정치
체첸은 최근에 국명과 수도명을 바꾸었다. 국명을 '이츠케리야 체첸'공화국으로, 수도인 그로즈니를 '조하르시'로 각각 공식 개명했다. 이번 개명은 체첸 독립의지를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츠케리야'는 체첸 강경파들이 독립국 체첸을 강조할 때,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체첸 남부 산악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인데, 이 지역이 18세기부터 대러시아 무장항쟁의 거점이 되면서 체첸독립의 상징어가 되었다. 체첸게릴라들은 스스로를 '이츠케리야 전사'라고 칭해왔다. '조하르'는 체첸 독립투쟁의 상징인 고 조하르 두다예프 전 체첸대통령의 이름에서 따 온 명칭이다. 그는 구소련군 공군출신으로 체첸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91년 10월 체첸 대통령으로 선출됐었고 그후 체첸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지난 96년 4월 무장투쟁 도중 전사했다.
♠ 산업 및 경제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이자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차점인 카프카즈지역의 토착족인 체첸족들은 전통적으로 대부분 유목민족이었다. 비록 유전과 천연가스의 발견이 자원 발전과 섬유화학 공업을 이끌었으나 대부분이 여전히 목축업, 양치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 사회 및 문화
숱한 수난을 감내했던 이들 체첸 민족은 본시 옛부터 독자적인 전통과 문화를 간직해 온 독특한 민족으로 특히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용맹성은 특기할 만하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