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통해 본 한국의 해방 전 후 혼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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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곡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통해 본 한국의 해방 전 후 혼란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머릿말
2.본론.
Ⅰ. 작가 오영진의 삶
Ⅱ. 출판시기(1949) 전후 시대적 상황
Ⅲ. 내용분석
1. 관련설화(모티브)
2. 등장인물분석
3. 줄거리
4. 작품의 주제 및 의의
5. 작품의 당시 시대적 상황의 반영
3.결론.
-맺음말
[참조문헌]
본문내용


서론

- 머릿말
이 작품은 일제 시대에는 악질적인 친일을 하고, 또 해방 직후에는 혼란기를 틈타서 거부가된 친일 사업가 이중생이 떳떳하게 행세하는 부조리한 사회상을 가차없이 풍자 비판하고 있는 오영진의 희곡이다. 오영진은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이 환희와 희망의 기대만큼 자유를 찾게 되고, 또 새로운 조국으로 건설되고 발전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족 분열과 친일 잔도들의 배신적 이중성에 사회질서가 혼란함을 보며 아픔을 느껴 이러한 시대적 현상을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통하여 풍자했다. 3막 4장으로 된 이 작품은 영남지방에 퍼져 있는 인물 전설인 방학중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데,1949년 5월 '극예술 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7영 극단'신협'이 '인생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친일파 경제 사범인 주인공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사회극이다.






본론

Ⅰ. 작가 오영진의 삶

오영진(吳泳鎭, 1916∼1974) 호는 우천(又川). 극작가·시나리오작가·영화이론가이다. 평양출신으로 민족지도자 오윤선(吳胤善)장로의 삼남매 중 막내이다.
집에 자주 드나드는 도산 안창호나 고당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로부터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자유분방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시절 ≪조선일보≫에 <영화예술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영화평론가로 대우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영화연구에 몰두한 오영진은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 민족계몽을 위해서는 소설보다는 영화가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영화작가가 되기 위해서 1938년 9월 동경으로 건너갔다가 1942년 귀국하였다.
오영진은 민족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아 조선인 학도지원병제에 반대하다가 일본 경찰에 피검되는 일도 있었다. 광복 직후 평양에서 조만식의 측근으로 우익민족주의 정치운동을 벌이다가 월남하여 공산테러리스트에게 총격을 받아 사경을 헤맨 적도 있을 만큼 철저한 항일반공주의자였다.
작가로서 그는 1942년에 처녀시나리오 <배뱅이굿>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맹진사댁 경사>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 그의 대표적 시나리오로 꼽히는 <시집가는 날>로 아시아영화제의 최우수희극상을 받았으며, 예술원회원으로 피선되기도 하였다.
그는 주로 희극을 통해 사회 및 정치현실을 고발·풍자·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고유의 전통세계를 현대에 접맥시킴으로써 한국희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배뱅이굿>·<맹진사댁 경사>·<한네의 승천>의 3부작은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나의 당신>이나 <허생전> 같은 작품은 고전소설의 현대적 재창조라고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말년에는 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아빠빠를 입었어요>·<무희>같은 격렬한 반일·반공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며느리>·<부부> 등의 사이코드라마를 쓰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한국인의 해학과 풍자를 잘 표현한 뛰어난 희극작가로 평가되며 전통소재를 현대화하는 데 재질을 보였다.
오영진은 전통극에 내재된 골계미·풍자성을 이어받아 한국적 연극미학을 찾아낸 희극작가라는 점에서 위상이 확고하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시대와 그 후의 이지러진 민족정서와 전통적인 문화정신을 회복시키고 진정한 한국희곡의 방향을 제시했다.

참고문헌
吳泳鎭 희곡집(同和出版公社, 1976), 韓國現代 희곡史(柳敏榮, 弘盛社,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