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회] 오원 장승업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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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과 사회] 오원 장승업에 대해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처음

Ⅱ. 가운데
1. 오원 장승업의 일생
2. 오원 장승업의 작품
3. 오원 장승업의 업적
4. 오원 장승업이 말하고자 한 것

Ⅲ. 끝
본문내용
Ⅱ. 가운데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다시 생각해 보면, '호랑이는 죽기 전에 가죽을 남길 수 없고, 사람 또한 죽어서야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는 뜻은 아닐지.
보통 학계에서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안견(安堅)과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 그리고 이 장승업(張承業)이란 인물을 꼽는다고 한다. 안견은 조선 초 세종(世宗)·세조(世祖) 연간의 회화 예술을 대표한다고 알려져 있고 정선과 김홍도는 조선 후기 영조(英祖)·정조(正祖) 시기에 활동한 화가들이다. 그리고 장승업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화가로 우리 회화사에서 근대 미술을 이끌어 낸 사람이라고 한다. 장승업은 다른 화가들보다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물이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일생에 대한 자료는 훨씬 적었다. 오히려 구전(口傳)하는 일화 중심의 그의 행적들이 그가 천재적 재능을 보였으며 온갖 기행괴벽을 일삼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장승업은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또 혼란스러웠던 당시 구한말의 분위기로 인해 그에 대한 기록에 제대로 남을 여건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 조선 말기의 천재적인 화가로 이름 석자를 역사에 선명하게 남겼다. 마치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