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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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를 읽고
마르틴 루터하면 바로 종교개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구텐베르크에 의한 금속 인쇄기술의 발명이다. 이로써 성경은 성직자들의 독점물에서 일반 신도들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라틴어로 기록된 성경은 각 나라의 문자로 번역되어 유럽전체로 퍼져 나갔다. 로마 카톨릭의 부패는 개신교의 창시로 이어졌고 수백 년간 유럽의 정신적 지주였던 카톨릭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책에서 디터리히는 루터의 성장과정부터 죽음까지의 루터의 전 생애와 업적들을 시대 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루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당시의 독일과 그 주변국의 상황을 추가하여 설명하고 루터의 업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루터의 성격 및 개인적 삶 또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루터의 아버지는 낮은 신분이지만 사회의 격동기에서 빠르게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루터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고등 교육과정을 거치며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법학을 포기한 채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젊은 수도사 시절 그는 수도 규칙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지키는 수도사였지만 신에게서 받게 될 형벌을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였다. 하지만 성서를 깊이 연구하던 루터는 곧 "하나님이 엄격하고 벌을 내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관대하고 자비로운 구원자라는 것을 인식" p 49
하였고 이 인식은 구원은 자신의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자비와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루터 종교관의 핵심 논리로 발전한다. 이러한 탑 체험을 전후하여 루터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행해지던 면죄의 지나친 오용을 비판하는 면죄부에 관한 95개 논제를 발표한다. 이 논제들은 독일 사회 전체에 빠른 속도로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하지만 이 때 루터는 이미 교황이 기독교인들에게 진정한 적대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교황과 대적하며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책을 열정적으로 펴낸다. 이 때 루터가 써낸 책에서 루터는 관직교회, 7가지 성사 등 기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반이 되던 관습과 전통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독일의 카를 5세는 황제가 된 후 첫 제국의회에서 거침없는 행보의 루터와 그의 추종자에 대한 국외 추방 명령을 내린다.(보름스 칙령) 그의 군주 덕택에 목숨을 건질 수 있던 루터는 잠시 동안 숨어 지내며 단 몇 주 만에 신약을 번역한다. 이후 형제 동맹 농민전쟁 등의 사건동안 루터는 다양한 혁명적 요구에 대해 자신은 개혁을 원할 뿐 혁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정리하며 개혁가로서의 위치를 고수한다. 이후 루터는 다양한 규정과 교리문답 등을 저작하며 개신교도의 신앙관과 예배, 삶에 대한 다양한 규칙을 규정하였고 이 때 그가 다룬 내용 중에는 기독교 안에서 국가의 역할도 포함 될 정도로 광범위한 범위의 사회를 종교를 기준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평생의 삶 동안 루터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열정으로 많은 책을 쓰고 많은 설교를 남겼으며 정치가로서, 교수로서, 설교자로서 살았다. 루터는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길 바랐으며 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 뒤에 가려지길 원하였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책과 사상들은 이후 독일 사상가들과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유럽 전체의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여전히 잊혀 지지 않고 기억되고 있다.
루터는 기록과 글쓰기가 드물지 않던 시대임에도 불고하고 많은 책을 번역저술하고 대단한 당대의 지식인인 성직자들과도 가까이 지냈던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구원의 참된 정의를 알리기 위해 힘쓴 그의 생애와 행적에 관한 기록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표지에서부터 루터에 대해 믿음의 종교 개혁가인가 광포한 선동가인가? 라고 질문하면서, 이 책을 통해 루터와 그의 업적을 영웅의 초상화로서만 표현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분열적인 모습까지 포함하여 그리겠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책 전체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기록을 통하여 편향되지 않은 시선으로 루터를 묘사하려 노력한다. 루터가 이룬 업적을 설명할 때에는 당시대에 루터를 비판하던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루터의 업적이 적혀있는 바로 그 페이지에 병렬적으로 배열함으로서 루터의 지나친 숭배를 경계하는 한편 루터의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 언급이나 노예제도에 대한 옹호 등을 설명할 때에는 비판적 어조와 함께 루터의 생각으로 고무되던 후대의 차별적 운동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루터가 이룬 다양한 업적을 소개하는 동시에 당시에 루터가 가졌던 생각 중 현 시대의 도덕관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세히 서술한다. 농노제도에 대한 옹호나, 왕에 의한 국가 지배의 정당성이 신으로부터 왔다는 왕권 신수설적인 그의 국가론,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지나친 경멸 등은 루터가 당시 세계의 사상적 근간이던 종교 분야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은 개혁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점 역시 루터의 모습으로서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루터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역시 한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오류이다.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진리로 여기기 때문에 종교 자체에 대해 비판할 수 없다. 여기서 종교 자체라는 말은 종교의 표현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교리 혹은 그 종교의 시초의 발생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 개신교의 신학자이자 목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디터리히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개혁가에 대한 책을 많이 썼다는 그에게 있어 종교개혁이란 기독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데에 있어 응당 있어야 할 사건이다. 따라서 아무리 작가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 해도 그것은 개신교의 시작이 된 종교개혁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없다. 물론 루터 전기에 불과한 이 책에서 종교개혁의 내용과 당위성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하지만 그의 파격적 행보만큼 그의 시대에 많이 존재 했던 루터의 적들, 즉 로마 교황청이나 황제 측의 루터에 관한 기술 혹은 그 편의 입장에서 제시한 루터의 주장에 반하는 기술 활동에 대한 언급이 책 전반에 걸쳐 적게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루터로 인해 유발된 로마 카톨릭 측의 자정운동 등에 관한 기술이 적다는 점에서 개신교 학자에 의한 개신교 창시자의 전기가 갖는 한계가 드러난다. 개신교의 교리만 접한 독자가 이 책처럼 한 쪽의 주장만 주야장천 기술된 책을 읽는다면 루터의 업적, 즉 종교개혁으로 인한 개신교의 탄생이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고, 이것만이 올바른 진리를 위한 행동 이였다는 듯 한 착각을 갖게 할 수 있다. 루터가 근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대륙을 큰 전쟁까지 일어났다는 점에서 루터의 영향력은 개신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루터 개혁 주장의 최대 적대자인 로마 카톨릭 교회의 루터와 상반되는 주장과 루터에 대한 평가 없이 책에서 공정함을 유지하려는 디터리히의 태도가 과연 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확실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루터의 주장에 대해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반박이 빈약하다면 빈약한대로, 혹은 로마 카톨릭의 입장에서 루터에 대해 철저히 연구된 내용이 있다면 그대로 또한 루터에 대해 추가로 공부할 만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이것 없이는 공정성이라 하여도 개신교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공정성일 뿐 그 테두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개신교를 벗어나지 못한 시각으로는 현재 개신교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루터가 비판했던 당시의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 이상으로 문제가 많다. 특히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제 감정기 때 신사참배와 역대 독재정권에 빌붙어 민중의 소리를 외면한 점(이 점에 있어서 한국 카톨릭은 구한말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외세를 이용했던 점을 반성하고 사죄하였다),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나라나 사회보다는 개인의 안녕과 영달에 치우진 점, 종교인의 납세의무에 가장 반대하는 점 또한 한국의 대형화된 교회들에서 교회와 성직자는 부를 축적하고 신도들은 교회를 정치적 사회적 인맥을 위한 사교와 친목의 장소로 여긴다. 교회가 면죄부는 팔지는 않지만 각종 명목으로 부를 축적하며 그 축적된 부와 권력은 목사의 아들에게 세습되기 까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과 수녀들은 고귀하게 보인다. 전통을 저버리고 부르짖은 개혁의 결과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루터가 원하던 교회는 이것이 아니고, 지금 필요한 사람은 루터보다 더한 지식과 의지로 환부를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개신교라는 틀에 박혀 수백 수천가지 분파로 나뉘면서도 자신들과 다른 해석과 학설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개신교는, 루터보다 더 지혜롭고 총명한 학자가 나온다고 해도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개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