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사회] 조선시대의 도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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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사회] 조선시대의 도화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서론

도화서는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청이다.
조선시대에는 예조 아래 도화서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적으로 화원을 양성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나 왕비의 초상화, 공신들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각종 의궤의 의궤도가 필요하였으므로 화원의 수요가 많았다. 화원 양성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10년 정도의 수련을 통해야만 화원이 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18세기의 김홍도와 같은 화원도 도화서에 소속된 사람이었다.
도화서는 비록 왕실, 사대부 등의 요청을 충족시키는 회화작업 관청이었으나 국가가 제도적으로 화가의 양성과 보호, 보장의 토대를 마련한 곳이었고, 여기서 화원들은 그들의 회화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도화서는 한국적 화풍을 형성하고 이어나가는 구실을 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2. 본론

1) 조선시대의 화원과 회화계

조선시대의 화원이란 궁중작화기관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궁중화가이며 동시에 직업화가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때로는 넓은 의미에서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사화원이나 지방 관청을 중심으로 일했던 방외화사를 포함한 모든 직업화가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회화계는 사대부 문인을 중심으로 한 여기화가와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을 중심으로 한 직업화가로 나누어지는데 문인화가들은 사회경제적인 자생력을 갖추어 그림을 자족적인 취미의 수단으로 향유했다. 반면 화원화가들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도화활동을 담당하며 국가의 제도적읜 틀 속에서 국왕과 문신관료들의 통제를 받으며 활동했다.
그림의 가치를 공리적이고 효용적인 측면에 두었던 유교국가의 왕과 관료들은 국가의 원활한 운영과 감계적인 목적을 위한 그림의 수요에 대비하여 도화서를 두고 사실적이고 정세한 묘사력을 갖춘 화원을 양성하였다.
참고문헌
-조선 미술사 개요, 리여성, 한국문화사
-조선왕조 상식여행, 최정훈, 이토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 1, 강관식, 돌베개
-조선 미술사 기행, 이태호, 다른세상
-네이버 오픈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