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hwp- 중세 전기문학 제1기 삼국·남북국시대
5.1. 한문학의 등장과 그 구실
5.1.1. 한문 사용과 중세화
고구려·백제·신라를 건국한 지배층은 군사귀족으로 건국서사시를 전승하고 주술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통치력을 행사하고자 했지만 국가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차차 사정이 달라졌다. 통치제도를 정비해 안정을 얻고 중요한 일을 기록에 올려 널리 알리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효율적인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 세 나라에서만 중세화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성공의 밑바탕이 된 공통적인 사회변동이 인간평등이다. 물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지만 지위의 차이가 있어도 그 둘은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신라에서 순장을 금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국가라는 사회체제의 등장으로 지난 시대의 관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이념과 지표를 설정해야 했다. 사고방식을 바꾸고, 제도를 정비하고, 문자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는 불교 공인, 율령 반포, 한문 사용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일제히 이루어졌다.
불교가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는 명분론을 담당했다면, 통치체제를 정비하는 작업은 유학의 소관이었다. 그 어느 쪽이든지 한문을 알아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문사용은 중요해져 갔다. 한문 사용의 과정과 양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불교나 유교 같은 세계종교를 받아들여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온 것은 문명이 발달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나타난 공통된 과정이었다. 공동문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공동문어는 민족어를 말살하거나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천자가 문명권 전체의 정신적 주권을, 왕이 자기 나라의 정치적 주권을 상징하는 존재이고 공동문어는 그런 질서관을 확고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구실을 했다.
하지만 한문과 우리말의 어순이나 문법이 많이 다른점은 두고두고 고민거리였다. 이를 해결하고자 한문 문장을 우리말의 어순과 어법에 따라서 쓴 서기체, 어순이나 어휘가 부분적으로 우리말에 근접한 한문인 변격한문, 항찰·구결·이두라고 하는 차자표기 등이 등장했다. 본래의 격식을 그대로 갖춘 한문과 민족구어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문으로 문자생활이 이중구조를 띄는 것은 중세문명의 특징이다.
5.1.2. 나라의 위업을 알리는 금석문
삼국은 중세적인 통치체제를 이룩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성장하고, 땅과 백성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다투게 되었다. 그렇지만 삼국의 뛰어난 군주는 전승을 자랑하는데만 치우치지 않고 자기야말로 백성을 위하는 데서 상대방보다 앞선다고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돌에다 글을 새긴 비를 세우는 것이었다.
고구려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414년에 세운 〈광개토왕릉비〉이고 여기에는 사실 위주의 건국시조, 구체적인 왕의 행적 등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술되어 있다. 신라는 〈순수비〉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모든 문장이 제대로 된 한문이고 이두는 고유명사 표기에서만 사용했다. 백제는 국가의 위업을 자랑하는 비문을 남기지 않았고 현존하는 것은 〈사택지적비〉라고 지나치게 번려문의 수법을 사용했다.
5.1.3. 국내외의 정치문서
삼국은 서로 긴밀한 관련을 맺고 중국 및 일본과의 교섭도 했는데 그렇게 하는 데 한문으로 된 국서가 꼭 필요했다. 국서는 외교상의 용건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는 구실까지 했다. 고구려는 당당한 자세를 가지고 수준 높은 문장의 외교문서를 작성했으리라고 짐작되고 백제의 외교문서를 통해 동아시아 전역에서 통용되던 국서의 형식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신라는 사대외교격식에 맞게 외교문서를 작성했으나 이는 국서에서 한 말과 실제 행동을 다르게 하는 양면작전을 씀을 짐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