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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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목 차
Ⅰ.서론
Ⅱ.본론
1.객관적 지식과 권력은 중립적인가
2.진리와 지식은 권력의 산물인가
3.역사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4.집단적 정체성과 역사 서술
Ⅲ.결론
Ⅰ.서론
젠킨스는 ‘역사담론’이란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며 그 언어적 구성은 역사가의 인식론, 방법론과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각각 달라지며 역사란 항상 단수가 아닌 복수이며 각각의 입장은 항상 일정한 사회구성 내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역사란 항상 누군가를 향해 웃도록 조율되어 있는 담론이라 하겠다. 역사를 승자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지배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역사학은 지배이데올로기인가? 본문에서 역사학과 지배이데올로기와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려한다.
Ⅱ.본론
1.객관적 지식과 권력은 중립적인가
역사가들은 현재 그들 자신의 신념을 직접 참조함이 없이 인식면에서 과거 사람들의 활동, 사상 및 동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우리 자신의 시대에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고 싶어 하였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역사에 접근 할 때 항상 현재의 정치에 우월성을 부여하였다. 프랑스 아날 학파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과학적 엄밀성을 주장하고, 마르크시스트 역사주의(historicism)에 대한 대안적 개념을 구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치적으로 중립은 아니었다. 브로델은 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그의 대작 『지중해와 필리페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를 썼다. 이는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패배를 딛고서 존속할 역사의 심층 구조와 정체성의 일부를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말년에『프랑스의 정체성』이라는 연구에서 프랑스사람들의 피는 선사 시대 이래 결코 섞이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서 보수적이고 국민주의적인 텍스트에 인종차별주의적 믿음을 넣어놓았다. 또 다른 역사가인 피에르 쇼뉘도 낙태를 합법화함은 “인구상의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확실한 살인”이라고 묘사하였는데 이는 역사 인구학에서 프랑스의 선구적인 역할과 전통적으로 낮은 프랑스 출산율에 대한 보수적이고 민족적인 강박 관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의 저술에 명백히 드러난다. 이와 같이 이들 역사가들의 그럴 듯한 과학적 중립성의 배후에는 불온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완전한 객관성을 확신했던 엘튼 조차 역사서술에 있어 정치적 문제와 선입견을 불러들였다. 첫 번째 저서『튜더 행정 혁명』서문에서 “정부란 집권할 만한 가치가 있게끔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학문 연구의 상당 부분을 “무정부를 막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통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연구는 사료로부터 꾸밈없이 태어난 역사는 결코 아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처음부터 강하게 뿌리내린 보수적인 정치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가는 개인이기에 중립적이지 못하다. 역사가는 현재의 온갖 가정들을 배제하고 문서에 접근해야 한다는 엘튼의 주장은 이와 같이 그 자신의 역사 서술에서 선입견이 작용하는 역할을 스스로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논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진리와 지식은 권력의 산물인가
모든 역사는 현재의 목적과 열망을 지니며, 그것은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또는 이념적 일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목적이 어느 정도까지 중요성을 갖느냐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현재의 도덕 및 정치적 견해에 좌우되는 것을 인정하거나 사회학 경제학 등의 인접학문에서 비롯된 이론들이 과거에 관한 연구에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모든 역사 서술과 연구의 ‘주요’ 목적 또한 권력을 부여함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주장은 주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미셸 푸코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자로 파리대학교 반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臨床)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을 저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