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넘지 못한 소중화, [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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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뛰어 넘지 못한 소중화, [연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뛰어 넘지 못한 소중화,
1. 의 내용 요약 및 부연 설명
어와 쳔지간에 남자되기 쉽지 안타.
평생의 이 내 몸이 즁원보기 원하더니
병인년 츈 삼월의 가례 책봉 되오시매,
국가에 대경이요, 신민의 복녹이라.
상국에 쥬청헐세 삼 사신을 내이시니,
상사에 뉴 승상과 셔 시랑은 부사로다.
행즁 어사 셔장관은 직책이 즁헐시고
겸집의 사복 판사 어영 낭텽 띄여스니
시년이 이십 오라 쇼년 공명 장하도다.
(중간생략)
쳥녀는 발이 커셔 남자 발 갓트되,
당녀는 발이 젹어 두 치즘 되는 거슬
비단으로 꽁 동이고 신 뒤츅의 굽을 다라
위뚝위뚝 가는 모양 너머질가 위태하다.
그러타고 웃들 마라 명나라 끼친 졔도
져 겨집 발 하나니 지금가지 볼 것 잇다.
아희들도 나와 구경 주룽주룽 몰겨 션네.
이삼셰 먹은 아희 어른 연이 츅케 안코,
오륙셰 되는 거슨 압뒤흐로 잇끄인다.
머리는 다 깍가다가 좌우로 한 모슴식
빳죠하니 따하쓰며 불근 당사 당긔하고
북쥬 감토 마락기의 채색 비단 슈를 노화
거문문 공단 션을 둘너 불근 단쵸 꼭 지르고
바지며 져고리고 오색으로 문흘노코,
배래기라 하는 거슬 보자기에 끈을 하여,
모가지에 거럿스니 배꼽가린 계로고나.
십여셰 처녀들도 대문 밧긔 나와 셨네.
머리는 아니 깍고 한편 엽헤 모화다가
사양머리 모양쳐로 졈쳠 졈쳠 잡아매고
끗가지를 꼬자스니 풍쇽이 그러하다.
쇼쇼 백발 늘근 연도 머리마다 채화로다.
무론 남녀 노쇼하고 담볘들은 즐기이네.
팔구 셰 아희들도 곰방대를 무럿고나.
(이하 생략)
연행가는 왕비 책정을 청나라에 주청하기 위해 우의정 유후조를, 상사 서당보를 부사로 하고 사행의 일원이 된 서장관인 홍순학이 고종3년(1866) 4월 9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5월 7일 압록강을 건너고 북경에서 사행임무를 마치고 7월 18일 다시 북경을 출발하여 그 해 8월 23일에 돌아올 때 까지 총 133일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일을 기록한 것이다. 윤광봉, 『고전시가와 예술』, 경인문화사, 2003
가사 작품으로는 드물게 장편인 탓에 노정이 자세하고 서술 내용이 풍부하고, 김인겸의 와 더불어 조선전기의 양반가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후기 가사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을 보면, 홍순학의 관심은 어느 한쪽에도 편중되어 있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있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조선의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기행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의 현장마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관을 토대로 한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를 살펴보면 작가 홍순학이 반청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부분 친명반청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양인에 대한 서술은 더욱 부정적인 시각에서 행해지는데, 서양인을 ‘서양국놈’, 혹은 ‘양귀자놈’이라고 표현하고, 여인네들은 흉측하며 아이들에 대해서는 ‘잔나뷔 삭기들과 이상이 갓도갓다/정녕이 짐승이요, 사람의 종자 아니로다’라고 표현했다. 몽고의 승려에 대해서도 ‘몽고놈들 볼작시면’이라고 한 것이라고 보면, 홍순학은 한족과 한민족 빼고는 모두 오랑캐라는 보수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는 문화적 우월의식과 오랑캐에 대한 경멸감을 담고 있지만, 청의 선진문물에 대한 부러움과 경이감, 처음보는 광경에 대한 신기함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 문체에 있어서 고사성어나 한시 구절 보다는 소박한 표현을 담고 있어, 그 독자층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2. 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