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시사의 유교 사상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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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부사시사의 유교 사상적 해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의 유교 사상적 해석
1. 들어가며
글 내용의 전개 방향
2. 펼치며
1) 선행연구 고찰
2) 시대적 배경과 관련한 의 자연, 이에 대한 유교적 해석.
3. 닫으며
견해 정리
1. 들어가며
윤선도가 살았던 조선 시대는 오직 유가 사상만이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되어 왔고, 다른 사상들은 외도(外道)의 취급을 받아 유학자로서 다른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사대부들의 작품에는 유가 외의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는 사실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물론 그 자신,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시대적 조류에 조예가 깊은 많은 학자들이 윤선도의 작품을 유교의 원리를 이용해 풀어내는 연구를 계속하여 는 유교원리의 틀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이 일정한 물리적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일종의 복합체를 이루어 거부하고자 하는 생각마저도 사상체계의 깨지기 쉬운 틀을 찢고 들어와 결국 그 생각들의 집합이 전체내용인 사상과 모순을 이루게도 하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중세시대에서 대륙의 사상들이라면 거의 남김없이 흡수 소화 해내어 동양의 삼대사상인 도교, 불교, 유교를 두루 통달해 낸 옛 지식인들에게는 비록 어느 한 사상이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외의 다른 사상에 접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조선 시대까지 축적되어 온 세 가지 사상의 복합체가 조선식의, 사대부식의 유교 유교를 인정하지 않는 견해가 통설로 되어 있으나 유교의 종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에 힘입어 여기에 나타나는 儒學, 儒家思想, 儒敎思想, 儒家 등이 儒敎의 종교성까지 포함하는 용어로서 결국 이에 대한 다양한 표현임을 알려둔다.
를 형성해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오창호씨는 윤선도가 생존했던 조선조가 유가 중심의 사회였고, 고산이 누구보다도 철저한 유학자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고산 시가 연구에 있어 고정관념으로 작용하여 작품에 드러난 유교 사상 외에도 그 속에 윤선도 자신도 모르게 내포해 낸 불가, 도가사상을 간과해 버린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고산이 생존했던 조선조가 儒家思想 중심의 사회였고, 그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儒者 였음은 異論의 여지가 없겠으나, 이와 같은 사실이 문학 연구에 있어서 고정 관념적으로 적용되어 모든 작품 세계를 유가적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해 온 점은 재고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략)……이러한 관점으로 고산의 작품을 대하면 그들 속에는 유가, 불가 사상에 못지않게 道家的인 색채가 풍기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에 드러난 세계가 자연에 대한 흥취뿐만이 아니라 속세에 대한 미련 갈등 또한 표현한다는 사실은 어느 연구자나 동의하고 있다. 이에서 더 나아가 에 는 윤선도 내적 세계가 도피, 은일에 대한 경사가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오창호씨의 연구에서 또한 고산의 경우 도피사상의 근본체질을 소유하고 있어, 은둔, 도피의 생활이 도가적인 仙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 곳곳에서 고답적이고, 퇴영적인 정조를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孤山의 경우도 도피사상의 현실적 공리주의의 근본 체질을 소유하고 있는 先驗論的 理想性에서 經驗論的 實在性의 高踏 退 遯藏의 생활을 낳아 도가적 요소와 초현세적이고 환상적인 仙思想이 그의 詩歌 군데군데에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고산유고에 실린 卷一의 작품 중 샌님이든 고사님이든 출세는 덧없으니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으라는 내용의 시 醇儒期 / 高士保亭亭 / 得馬浮影 / 亡羊石火星 / 爭如披綠髮 / 閒坐講丹經 / 遮草流光保 / 花開又葉零
를 인용하면서 ‘한가히 앉아 도덕경이나 읽어 보구려’라는 구절에서 고산이 도덕경을 읽어 봤으리라는 가정 하에 그가 도가사상에 심취한 적이 있었고 노장과 도가에 대한 서적을 탐독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정해 낸다. 그러므로 고산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 되어 자신의 원류 사상으로 깊숙이 자리 잡은 도교가 어부사시사에 이르러 은일, 고답, 퇴영적인 정서로 발현되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는 자연에서의 칩거(蟄居)가 도교 사상을 설명하는 한 마디로 요약되어 왔다는 사실에 반박할 근거는 없으나 그 표현에서 내포되는 은일, 도피의 의미가 도가 사상의 핵심적인 원리와 대등한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자에서부터 시작한 도가사상은 노자와 장자가 살았던 그 시대의 사회상에서 유리된 사상을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혼란스런 춘추전국시대가 어떻게든 도가 사상에 대한 논의에서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즉, 노자가 주장한 무위(無爲)란 당시 천하를 쟁패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군주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바, 유(有)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무(無)에 초점이 맞추어 졌던 것이다.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道)를 하는 자는 날마다 덜어낸다. 덜고 덜어내어 마침내 무위에 이르게 된다. 무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장차 천하를 취하려고 한다면 항상 무사(無事)로 해야 한다. 일이 있게 되면 천하를 취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노자』
이러한 사상에서 ‘자연’이 언급된 것은 유(有)를 이루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자연 속에서의 수양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지 험난한 시대에서의 자기 보존 수단으로서의 도피, 은일이 포함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후에 장자는 개인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자연을 언급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분쟁을 조절하는 한 양태가 드러난 ‘자연’으로서 오히려 은거, 도피와 반대가 되는 인간사회에서의 한 개인의 융합, 조화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서 살펴본다면 윤선도의 작품에서 나타난 도가 사상에 대해 고찰하는 일에 회의가 들 수도 있으나 이에 대한 연구 자체가 아예 무의미 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필자가 처음에 밝혔던 ‘사상’ 이라는 것의 속성 때문이다. 유교의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믿어왔던 에서 도가사상을 찾아내려고 한 오창호씨의 연구는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에 이루어진 에 대한 수없이 많은 연구와 모순 되는 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모두 다 부정해 버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도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 논의에서 필자 또한 를 되도록 이면 유가 사상에 국한 되지 않고 에 나타난 ‘자연’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나름의 견해를 펼치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많은 부분이 유가 사상에 근거하여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일부는 도교나 불교의 사상과 혼용되어 해석해 보는 부분도 있을 것이나 논의의 초점은 작품 그 자체에 두고 여러 사상들은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로서만 여긴다면 앞으로 펼칠 내용들도 하나의 의견으로서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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