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 역사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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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출의 역사와 기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연출의 역사
Ⅰ. 연출의 역사
1. 고대와 중세의 연출
① 고대그리스의 연극
○ 도시 디오니소스(City Dionysia) - 아테네에서 매년 3월 말에 디오니소스 신에게 경배를 바치기 위하여 열리는 거의 유일한 대표적인 비극 경연대회로서 5일간의 축제기간 중 적어도 3일간 매일 한 명의 비극작가가 초청되어 3편의 비극과 1편의 ‘야희’를 공연했다. 에스킬러스 때까지는 극작가가 연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기예의 분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라 직접 출연까지 했다. 또한 코러스의 훈련은 물론 음악과 무용까지 만들었고 공연의 전 과정을 두루 책임졌음으로 극작가 겸 연출가였던 셈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극작가를 가리켜 ‘didaskalos(교사)’라 불렀다.
② 중세의 연극
○ 10세기 - 교회안에서 종교극으로 시작되었다
○ 14세기말 - 세속화가 거의 이루어져 종교성을 일탈하여 소재는 성서에서 따왔다 해도 세속적 오락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 가장 성행하던 연극은 성서극으로 성서의 에피소드들을 극화하여 연속적으로 공연하였기 때문에 연쇄극(Cycle Drama)이라고도 불렸다.
○ 연쇄극 - 1350년부터 1550년사이에 유럽 전역에서 행해졌던 연쇄극은 창세기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방대한 내용을 그리고 있어서 공연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거창하여 우주적 연극(Cosmic Drama)라고도 불린다. 아마추어 배우라고는 해도 출연진이 300명 이상일때도 있어 이들을 통솔하는 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천구과 지옥같은 비 현세적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고 온갖 기적이 행해지는 장면들 또한 연출되는데 이들을 위해 ‘축제감독’이라 불리우는 연출가의 역할을 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이들은 오늘날의 연출가가 무색할 정도로 미세한 디테일 하나라도 결코 소홀히 넘기지 않았고 당시의 연출대본을 보면 배우의 등퇴장에서부터 무대장치와 기계의 운행에 따른 모든 큐(Cue)가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2. 르네상스에서 18세기까지의 연출
○ 르네상스란 -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르네상스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