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론 - 신동엽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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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동엽론 - 신동엽의 시세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동엽론
1. 생애와 활동
신동엽의 생애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김응교,「신동엽 시연구-장르적 특성을 중심으로 」(연세대 석사 논문, 1988)
첫째 기간은 성장ㆍ교육기(1930~50)이고, 둘째는 분단 체험과 문학 습작기(1951~59)이다. 그리고 셋째 시기는 문단 활동기(1959~69)이다.
1) 첫째 기간, 성장ㆍ교육기(1930~50)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신연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동엽은 2대 독자로 위로는 이복누이가 있었고, 아래로는 여동생만 여섯이었다 한다. 그러니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각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식민지반봉건의 모순구조 속에서 그리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된다. 1937년 부여초등학교에 입학한 신동엽은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1등을 할 만큼 명석했다고 한다. 그의 6학년 당시 담임선생님인 김종익은 매우 진보적인 사람으로 신동엽의 의식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있어서 신동엽의 시세계에 영향을 크게 주었던 것을 두 가지로 보자면 하나는 누이에 대한 연민과 교사 김종익과의 만남이다. 1942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비가 제공되는 전주사범에 진학한다. 입학 후 해방을 맞이하고 미군정을 거치면서 좌우익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으며 갈등의 해소를 위해 엄청난 독서를 하게 된다. 이 때 엘리어트의 시와 시론, 투르게네프, 크로포트킨의 도서를 주로 탐독했으며, 이중 무정부주의 아나키즘(anarchism), 자유연합주의라고도 불린다. 이는 모든 형태의 권력과 강제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상호간의 연대를 근본 원리로 하는 사상이다.
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2) 제2기 분단체험과 문학습작기(1950~59)
서울로 상경하여 194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나, 1950년 6ㆍ25의 발생으로 전시연합대학에 소속되었다가 ‘국민방위군’에 징집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에서 날게를 먹고 죽음의 원인이 된 디스토마에 감염되고 이로 인해 부여에서 요양 중 구상회란 친구를 얻게 된다. 둘은 문학적으로 학문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함께 한반도 일대를 여행하게 되는데 그 당시 동학농민운동의 발원지 등을 돌며 역사적 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 또한 『노자』 등의 독서 체험을 통해 노자의 이상적 자연주의 사회관과 원시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 후에 서울로 다시 올라와 친구와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던 중 손님으로 온 고3 여학생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가 부인이 되는 인병선씨다. 후에 부모님께 연애사실을 알리고 1955년 군에 입대, 1년 후 전역과 함께 그녀와 결혼한다. 결혼 후 1958년에 충남 주산농고에서 교편을 잡지만 디스토마가 재발되어 휴직하게 되고, 고통과 좌절감 속에 , 등 시집 『아사녀』 1부에 수록된 대다수의 작품들을 쓰게 된다.
3) 제3기 문학활동기(1959~69)
1959년 장시 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같은 해 『조선일보』 에 시 , 『세계일보』 에 을 발표하였으며, 1960년 교육평론사에 근무하면서 『학생혁명시집』에 419를 지지하는 시 를 발표한다. 이후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헌책방 경영, 교사,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다가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시작(詩作)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신동엽은 4ㆍ19, 5ㆍ16을 체험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자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모순의 근원을 모순된 정치체제와 신제국주의로 상정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작품을 생산한다.
1963년 , 등을 담은 첫 시집 『아사녀』 를 간행한 이후 1964년에는 이른바 63사태를 계기로 현실적이며 참여지향적인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965년 그는 한일협정 비준반대 문인서명운동에 차여하여 실천적으로 활동하며, ,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동학혁명, 419혁명과 현실을 대비하는 의식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