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일제시대 군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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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일제시대 군위안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R/E/P/O/R/T
일제시대 ‘군위안부’
-목차-
Ⅰ. 머리말
Ⅱ.본문
1. 일제시대 ‘정신대’의 의미변화
2. 일제시대 ‘종군위안부’의 실태
Ⅲ.맺음말
* 참고문헌
Ⅰ. 머리말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전쟁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확대해가면서 점령지에서 필요한 군수 물자의 생산, 공급과 군인들의 강간행위를 방지하고 성(性)문제를 해결한다는 핑계로 젊은 여성들을 동원, 수용하여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가 삼은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은 노동력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근로정신대(勤勞挺身隊)’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을 끌고 갔는데,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이들은 일본과 한국 등의 군수공장에서 일하였으나, 전쟁터에서 사기가 떨어지고 향수병에 시달리는 일본군들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군위안부를 모집하여 전쟁터로 투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에서는 기존의 ‘정신근로대’로 끌려온 우리나라의 여자들을 투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처음은 자원하는 여자나 기생 등의 한정된 여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군인들이 성병에 감염되는 사례가 늘기 시작하자 직업여성은 배제시키고 처녀들을 위주로 모집했으나 여의치 않자 강제로 동원하기 시작했으며 그대상이 우리나라의 여자들에게로 집중된 것이다.
일본군의 성적 대상을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로, 그들이 수모와 고통을 당한 현장을 ‘위안소(慰安所)’로 이름 지어 부른 것은 물론 패전 전의 일본 군부였다. 패전 후 일본에서도 그 명칭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대로 사용했고, 그 피해 민족의 하나인 한민족의 남북 학계에서도 역시 적합한 명칭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군의 성적 대상이 되었던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통해서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행위는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고통중의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명칭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명명은 그 역사적 의미를 가름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여 이글에서 ‘정신대’와 ‘종군위안부’라는 단어가 합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다시 명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보기로 하자.
Ⅱ.본문
1. 일제시대 ‘정신대’의 의미변화
식민지 조선에서 정신대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일전쟁의 수렁에 빠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던 1941년경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농촌에서 전시체제를 강화하고 농번기 농촌 노동력을 조직화하기 위해 만든 산업 보국단을 가리키는 용어 이다. 그러나 정신대 조직은 농민을 대상으로 한 것 뿐 만아니라 각계각층으로 확대 되어갔다. 학생의 근로 보국단을 정신대라고 지칭하기도 하였고 농촌의 남자 노동력조직뿐만 아니라 일본 농촌 견학을 위한 농촌 부인조직을 정신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