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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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와 초등교육

Ⅰ. 서론 ⅰ) 사례 제시
ⅰ) 아리스토텔레스 소개 ⅱ) 사례 분석
ⅱ)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
ⅲ)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Ⅲ. 결론
ⅰ) 초등 교육에서의 적용
Ⅱ. 본론 ⅱ) 느낀 점
Ⅰ. 서론
ⅰ) 아리스토텔레스 소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이다.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BC 384년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아카데미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연구와 교수를 거쳐(이 동안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교육),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서 직접 학원을 열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노트이다.
스승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가 대립되었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고, 뒤에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플라톤의 철학적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소여(所與)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와 궁극적인 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성, 지식의 전부분에 걸친 종합성에 있다.
ⅱ)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
행복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 행복이라고 번역되는 고대 그리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용어 자체가 잘 이루어짐 또는 잘됨이라는 뜻의 낱말이고, 이는 곧 요구되는 조건들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룬 상태를 지시한다. 이 조건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덕은 아레테(arete)라는 고대 그리스의 용어를 옮긴 말이다. 이 아레테라는 낱말은 원래 어떤 것의 본성이나 기능을 잘 실현하는 품성의 상태를 뜻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아레테, 즉 인간의 덕은 인간의 본성이나 기능을 잘 실현하는 품성의 상태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덕이란 어떤 것의 본성이나 기능이 최대한 적절하고 훌륭하게 수행됨으로써 구현되는 상태의 질적 성격이자 그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의 설명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먼저 모든 덕은 그것이 무엇의 덕이건 간에 그 무엇을 좋은 상태에 있게 하고, 그것의 기능(ergon)을 잘 수행하도록 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의 덕은 눈과 눈의 기능을 좋은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눈의 덕에 의해 잘 보는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말의 덕은 말을 신실하고 좋은 말로 만든다. 그래서 만일 다른 모든 경우에도 이와 같다고 한다면, 인간의 덕 역시 그것에 의해 좋은 인간이 되며, 그것에 의해 자신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품성상태일 것이다."
덕은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구분된다. 철학적 지혜나 이해력에 해당하는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발생하고 성장한다. 반면, 도덕적 덕은 관대함이나 절제 등과 같은 좋은 성품들을 의미하며,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무서워하는 습관을 지니면 겁쟁이가 되지만, 태연한 마음을 가지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습관을 지니면 용감한 사람이 될 것이다. ‘윤리학(ethike)’이란 명칭은 ‘습관(ethos)’이라는 단어의 파생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요, 하루아침에 여름이 되는 것도 아닌 것처럼, 인간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는 것도 하루나 짧은 시일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유명한 비유를 남기며 ‘온 생애를 통한’ 덕스러운 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덕 있는 행동일까? 도덕적 덕은 정념과 행동들에 관계하기 때문에 때로는 과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족하기도 하다. 정념이란 욕정이나, 분노, 공포, 환희 등 쾌락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들이다. 쾌락이나 고통은 많아도 탈, 적어도 탈이다. 과식이든 다이어트든 인간의 건강을 해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덕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용기’의 덕은 두 가지의 악덕인 공포(용기의 부족)와 만용(용기의 과다) 사이의 중용이다. ‘관대함’의 덕은 인색(관대의 부족)과 낭비(관대의 과다) 사이의 중용이다. 이처럼 중용은 두 가지 악덕 사이에 처하게 되지만, 언제나 동일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감기에 걸린 사람과 올림픽 챔피언이 같은 양의 운동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때로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칭찬하면서 사내답다고 하기도 하고, 부족한 사람을 칭찬하면서 온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기질이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지를 고려한 탓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술적 중간과 같은 언제나 동일한 중용이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올바른 중용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인간 각자에 맞게’ 언제나 상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