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악지 속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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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악지 속악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려사』악지 속악편
-차례-
1. 들어가며
2. 『고려사』악지 속악편
3. 속악가사의 특성
4. 『고려사』악지 속악편의 구성 및 내용
5. 나가며
1. 들어가며
고려가요는 신라의 향가와 조선조의 시가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여 한국시가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고려가요의 중심이 되는 속요를 보면 현재 전하고 있는 작품이 희소하고, 그에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여 정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보충할 수 있는 자료가 바로 『고려사』악지의 속악편이요, 거기에 실린 속악가사 자료라 할 수 있다.
『고려사』 악지는 악에 대한 짤막한 일반론을 맨 앞에 두고 아악·당악·속악의 삼개편을 차례로 배열하였다. 속악편은 다시 속악 일반론, 악기, 정재, 고려와 삼국의 속악가사와 용속악절도(用俗樂節度)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그 중에서도 본 발제에서는 『고려사』악지의 ‘속악편’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속악가사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2. 『고려사』악지 속악편
조선조 태조 때부터 시작된 『고려사』 편찬 작업은 우여곡절 끝에 세종이 기전체(紀傳體)로 방향을 바꾸어 1451년에 완성되었다. 『고려사』 악지는 권 70·71에 실려있는데, 기(紀)·지(志)·연표(年表)를 노숙동(盧叔仝)·이석형(李石亨)·김예몽(金禮蒙)·이예(李芮)·이기견(李起)·윤자운(尹子雲) 등이 찬술하고 김종서·정인지·허후·김조·이선제·정창손·신석조가 교정을 맡았다 했으니, 악지는 신중하게 찬술되었다고 판단된다. 악지의 첫머리에는 악을 “풍화(風化)를 수립하고, 공덕(功德)을 본받게 하는 것”이라고 역사서답게 효용성을 들어 정의하였다. 편찬자들은 악지의 전래 자료가 부족한 여건에서도 이를 확보하기 위해 패관의 잡록과 비부(秘府)의 고장(故藏)을 발굴하는 의욕을 보였던 것이다.
악지는 아악(雅樂)·당악(唐樂)·속악(俗樂)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고려가 제향이나 연향에서 이들을 함께 썼기 때문이다. 책의 분량으로 보면 아악 59면, 당악 60면, 속악 37면으로 속악이 가장 적다. 속악편의 구성을 보면 도론(導論), 악기(樂器), 정재(呈才), 고려속악가사(高麗俗樂歌詞) 등 크게 여섯 개의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의 속악가사가 『고려사』 악지에 수록된 이유는 고려에서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속악가사 작품을 위시하여 속악편의 내용이 악보 자료를 근거로 쓰여졌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속악편의 도론(導論)에서 “고려의 속악편에 수록된 내용이 전래하는 여러 악보를 참고한 결과물”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악보란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악곡, 가사, 악기, 연주법 등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자료일 터이므로 속악편이 이들 문헌을 근거로 이루어졌다면 이에 따라 기록 내용도 신빙성이 높다고 인정할 만하다.
속악편의 구성을 보더라도 속악의 총체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도론(導論)에서 속악편에 활용된 자료와 이어체(俚語體) 가사 표기 방식을 간단히 언급하고, 이어 속악을 연주하는데 사용하던 악기 13종을 소개하였다. 다음에 무고, 동동, 무애 정재(呈才)를 자세히 기록하고 그것에 대한 해설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여기에 「서경(西京)」을 포함하여 29편의 재목 아래 작품과 해설문이 실려 있다. 『고려사』가 한문을 전용했기 때문에 우리말 가사를 적을 수가 없어 본래 한문으로 쓰인 작품이나 번역시가 있으면 그것을 싣고 그것이 없을 경우에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문을 붙였던 것이다. 이어서 신라·백제·고구려의 속악가사를 삼국속악(三國俗樂)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였는데, 작품 모두가 국어체로 되어 있으므로 해설문을 붙였다. 끝에는 용속악절도(用俗樂節度)를 두어 속악이 어떤 행사에서 쓰였는가를 설명하였다. 이처럼 속악편은 고려 속악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 태도면에서 보더라도 찬술자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확인된다. 자료 확보에 최선을 다했음은 앞에서 언급했거니와, 주어진 자료를 활용하여 기술함에 있어서도 자료의 신빙 정도에 따라 신중을 기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의 기록문을 보면 자료의 신빙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차등 방식을 구사했다. 자료가 확실한 경우의 단정형, 미심쩍어 상이한 양론을 제시한 유보형, 아예 모르겠다고 실토한 미지형이 그것이다. 유형별 분포를 보면 미지형에 , , 3편, 유보형에 , , 3편이 각각 있는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단정형에 속한다. 단정형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고려사』가 그만큼 신빙성 있는 자료를 활용했다는 방증이 된다. 아울러 유보형과 미지형에 속하는 자료조차 소홀히 다루지 않고, 그 신빙 정도를 세심하게 저울질하여 찬술에 임했다는 사실도 주목받아 마땅하다.
또한 속악편의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속악가사 45편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한문전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말 가사를 수록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가사를 온전하게 전하고 있는 고려의 속요 작품이 10여 편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할 때 자료의 가치는 마땅히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래의 악보자료를 활용하여 이룩된 것임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처럼 속악편에도 전혀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선발과 해설 장면에서 찬술자들의 유교적 예악관이 지나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학에 반하는 불교 계통의 작품과 처럼 외설적인 작품이 속악편에 수록되지 못한 원인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순수한 남녀의 사랑을 정절의 여인상을 노래한 것으로 부각한 도 그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은 기록 내용면에서 모순을 보이고 있다. 신라 말년에 지었다고 해설하면서도 작품의 국적을 백제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측한 바와 같이 유학의 예악관에 따라 거기서 벗어난 작품을 고의로 배제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속악편의 취약점이 되는 것으로 찬술자의 편협한 안목을 탓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속악편에 기록된 내용의 신빙도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악관에 따라 작품을 선발하는 행위와 자료를 활용하여 기록하는 태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찬술자가 작품을 의도적으로 왜곡 해석하거나 실수로 오류를 범한 사례가 앞서 거론한 것 이외에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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