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 김시습의 문학사적 의의, 생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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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 김시습의 문학사적 의의, 생애, 작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시습, 그는 누구인가
-생애와 작품을 통해 알아본 김시습의 문학사적 의의-

Ⅰ. 서론
Ⅱ. 김시습의 생애
1) 신동[神童]
2) 계유정난[癸酉靖難]
3) 계유정난[癸酉靖難] 그 후
Ⅲ. 금오신화[金鰲新話]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2)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Ⅰ. 서론
김시습[金時習]은 1435년에 태어나 1493년에 사망한, 생애 전체에 걸쳐 6명의 임금아래 살았던 조선 시대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우리에겐 생육신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는 ‘천재’였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은 혼란한 시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생육신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세조가 왕궁을 피바다로 만들었던 ‘계유정난’의 시대를 보냈다. 그리고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비범했던 김시습은 왕에 대한 충성심 또한 두 배로 비범하여 새로운 왕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속세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자유로운 나그네로 삶을 살다가 생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라는 최초의 한문소설을 편찬하는 업적을 세움으로써 ‘천재 김시습’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알렸다.
하늘이 택한 천재였지만 시대가 알아보지 못한, 아니 스스로 시대를 거부했던 비운의 천재 김시습. 이 글은 김시습의 생애와 그 작품을 통해 문학사적으로 김시습이 갖는 의의를 밝히는데 그 목표가 있다.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유년 시절, 김시습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계유정난, 그리고 그 이후 떠돌았던 삶, 그리고 그의 대표적 작품인 를 통해 고전 문학에서 중요하게 위치하고 있는 ‘김시습’이라는 인물의 작가적 의식과 존재 가치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해해보자.
Ⅱ. 김시습의 생애
작가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생애를 되짚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봄으로써 학자로서, 문인으로서, 신하로서, 그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김시습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신동[神童]
김시습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면모를 가진 소위 말하는 ‘천재’였는데, 이는 이름부터 그 사실이 드러난다. ‘시습(時習)’이란 이름은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깨우친 김시습에게 이웃에 사는 집현전 학사 최치운이 지어준 이름으로 『논어』에 나오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글귀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병헌이지영,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돌베개, 1998, 37쪽 참조.
그의 천재성에는 비단 그의 재능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보탬도 있었다고 보여 지는데, 그는 어릴 적 외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고 그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풍부하여 시습의 교육을 위해 성균관 근처로 이사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의 천재성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일화가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습에게 외할아버지는 "화소함전성미청(花笑檻前聲未聽)", 즉 "꽃이 난간 앞에서 웃고 있지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네"라는 시구를 불러주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시습은 병풍에 그려져 있는 꽃을 가리켰다. 이에 놀란 외할아버지가 다시 "조제임하누난간(鳥啼林下淚難看)", 즉 "새가 숲속에서 울고 있지만 그 눈물은 보이지 않는구나" 라고 하자 시습은 역시 병풍에 그려진 새를 짚어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김시습의 천재성은 말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남다르게 두각을 드러냈는데, 마침내 그의 천재성은 당시 임금이었던 세종에게 전해져 승정원에 불려가기도 했었다. 왕은 시습에게 벽에 그려진 산수화를 가리키면서 저것으로 시를 지어보라고 하자 시습은 ‘작은 정자 같은 배 집에는 누가 있는가?’라고 대답했다. 이런 식의 시험이 계속 될 때마다 시습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였고, 이런 신동의 재주에 감탄한 세종이 비단포를 하사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마지막까지 이 어린 천재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지 비단 50필을 스스로 들고 가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김시습은 비단을 모두 펼친 뒤 양 끝을 서로 묶어 연결하여 길게 늘어뜨리고는 마지막 하나는 자신의 허리에 묶어 줄줄 끌고 나갔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매월당집 [梅月堂集] - 천재의 광기(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9.18, 휴머니스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101&cid=263&categoryId=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