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식민지와 고향 1920 30년대 소설 작품의 이향과 귀향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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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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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식민지와 고향
-1920,30년대 소설 작품의 이향과 귀향의 변증법
목차
1. 들어가며
2. 고향의 개념 및 ‘귀향’ 모티프
3-1 현진건-「 고향」, 이향과 귀향
3-2 박화성- 「고향 없는 사람들」,이향과 귀향
4. 나오며
1. 들어가며
1920년대에 한국 사회 민중 또한 3.1운동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보인다. 그들은 근대라든지 국권 같은 추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먼저 절실한 것은 생존 그 자체였다. 이 시기 우리 사회는 전통적 농업사회 구조에서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화해가고 있었다. 사회 변동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일제가 주도면밀하게 추진한 식민지 정책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때문에 농업사회에서의 도덕적 경제 체제와 그 가치, 이른바 ‘상호성’(reciprocity)과 ‘생계윤리’(subsistence ethics) E. P. Thopmson과 James C. Scott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전의 농업사회는 두 가지 핵심적 원리, ‘상호성’과 ‘생계윤리’에 기초하여 유지된다고 한다. ‘상호성’이란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형성된, 보호와 충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적 관계로서, 농업사회에서의 지주는 이를 통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계급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생계윤리’ 란 가뭄이나 홍수로 인하여 흉작인 경우 지주는 소작농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하여 세율을 낮추거나 혹은 더 나아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관습적인 윤리를 말하는데, 농업사회에서의 지주는 법적인 임대차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상의 지주와 소작농과의 관계와는 달리, 지주는 관습적으로 소작인에게 작황이나 기후에 따라 다른 수준의 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 생계윤리 등에 기초한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 무너지고, 그래서 이 시기 농민들은 엄밀한 이해관계와 이윤 극대화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시기 농민들은 지주에게 충성을 맹세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었지만, 또한 지주에게 더 이상 어떤 보호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한일 합방 이후 일제에 의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식민지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수탈의 중심 대상이 된다. 따라서 3.1 운동의 현실적 실패는 결과적으로 이 시기 민중에게 지식인 계층과는 다른 의미의 절망을 심화시킨다.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암담함이 그것이다.
1920년대 조선 사회는 토지 조사 → 토지 수탈→ 농민 착취로 이어지는 일제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수탈 정책에 따라 농민의 궁핍화가 극에 이른다. 이 시기 농촌의 빈민화는, 20년대 후반 이후 “전체 농민의 약 절반가량이 이른바 세궁민이라 불린 빈민층으로 고정”되어 간데서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식민지 지배 정책은 “농촌에서 소작 농민의 수를 증가시키고 이들을 계속해서 빈민화 시켜” 가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조동길, 『일제하 농민운동사』, 한길사 1979
강만길,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그 결과, 우리의 농촌사회는 예전에 중농이던 사람은 소농으로 떨어지고, 소농이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는 농촌 빈민화가 심화된다. 또한 대지주→ 소지주(중농), 소지주→ 자작농(소농), 자작농 → 소작농, 소작농 → 이농. 이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계층 영락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빈민수가 급증하고, 이농 현상도 급진전한다. 이 시기에 소작쟁의가 빈발하는 것도 식민지 농업 정책의 결과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자작. 소작농을 포함하여 전체 농민의 8할에 이르는 소작농 1920년대 농민 분포를 보면, 1918-22년에 자작농 20.4% 자. 소작농39.0% 소작농 40.6% 5년 후 (1923-27)에는 자작농 20.2% 자. 소작농 35.1% 소작농44.7%, 다시 5년 후인 1928-32년에는 자작농18.4% 자. 소작농 31.4%, 소작농 50.2%의 통계를 보이는데, 10년 사이에 자. 소작농이 격감하는 반면 소작농이 그만큼 급증하는 데서 농민의 계층영락화 실상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기준, 『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 대왕사, 1977, P390
들은 ‘쟁의’를 통해 동척을 비롯한 일본인 지주들에 맞서 투쟁하는데, 이 시기 거의 모든 소작쟁의가 소작권 박탈(1924년의 경우 전체 쟁의의 76.8%) 또는 소작료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3.1운동 이후 전국 곳곳에서 반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소작쟁의는 전통적 농업사회의 도덕경제가 와해된 시대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농민운동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동력은 농민이 처한 상황 자체였다. ‘복종’과 ‘보호’로 이어져 있던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상호관계가 무너진 현실 앞에서, 농민은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삶을 의지할 수 없었고, 따라서 내일의 삶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처지에 놓였다. 전통적 농업사회에서의 지주와의 도덕적 관계를 좋았던 옛날로 그리는 한편, 이를 파괴한 일부 지배계급과 그 배후 세력인 일제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농민의 소작쟁의는, 지식인 계층의 관념 편향성과는 달리, 3.1운동 실패에 따른 시대적 절망감의 사회적 표명이며, 생존과 직결된 민중 운동이라 볼 수 있다. 식민사회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시대상황 관련 아래 형성된 20년대의 소설은 당대의 사회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려 한데서 그 특색이 드러난다. 리얼리즘의 인식 방법이 그것인데, 이는 개인과 사회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이 근대전환기 사회에 비해 더 성숙되어졌음을 의미한다. 20년대의 한국 소설에는 당대 사회의 어둡고 불안한 현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척박한 삶의 조건,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자기 갈등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 고향의 개념과 귀향의 모티프
‘고향’ 은 지정학적. 군집적인 것으로서의 사회학적 개념일 뿐 아니라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철학’과 ‘고향’의 결부는 그 안에 내재해 있는 두 가지 중심 성격에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첫째는 ‘동질성’ 내지 ‘정체성’이며 다음으로는 ‘의미창고’라는 점이다. 문화사회학자인 카를로 몬가르디디는 오늘날 ‘고향’의 신화적. 시공적, 그리고 사회학적 의미는 소그룹들의 정체성을 조장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 고향이 암시하는 자기 동질성에는 사회문화적 측면 외에 개인의 본질 규정 및 실존적 반성의 측면이 우선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향’개념을 종교적 차원에서의 ‘하나님’이나, 하이데거 철학에서처럼 ‘존재Sein’ 같은 것으로 확대하여 생각한다면 ‘고향’은 더욱 더 정체성에 대한 답이 된다. ‘고향’은 나와 우리의 ‘어떤 경계지어진 고유한 공간’이므로, 그것은 타자와 타자성으로부터의 분리와 격리 속에 있으므로 자기 동질성의 토대가 된다. 자기 동질성을 느끼고 인식하고 경험되어짐으로써 개인이 자기 발견, 자기 확정, 자기 인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질성은 감성과 사유의 대상이기도 하고 인식과 체험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 의식과 삶의 총제적 국면에서 작용하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변화에서도 동일하게, 또 어떤 공간적 영역에서도 변화되지 않는 그 자체로 남는다. 이런 근원적이고 불변적 자기 동질성 내지 정체성은 유동하는 오늘의 사회와 급변하는 이 시대의 기류에서도 늘 ‘자기임’으로 남아 있어 그 근본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향이 주는 자기 정체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과 측면을 지니고 있는지 보자. 첫째, 고향에서 나타나는 자기 정체성은 ‘익명성’이 아니다. 도시의 군중 속에서 그는 익명적 존재일지 몰라도 고향에서는 그는 이름과 인격, 가계와 혈통이 드러나 감춰진 것이 없는 노출된 구체적인 개별자이다. 둘째, 고향에서 나타나는 자기 정체성을 ‘이질성’이 아니다. 생의 과정 속에 있는 다양한 활동과 삶, 그리고 변모하는 위상이 인간을 질적 가변성의 범주로 몰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자기됨’의 변화는 아니다. 고향도 인간의 이러한 동질성의 바탕이며, 또 상징이다.
셋째, 고향에서 나타나는 자기 정체성은 ‘소외성’이 아니다. 실향은 고향을 잃거나 아니면 떠나서 타향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의미적으로 볼 때 ‘근원으로부터의 이탈’인 것이다. 넷째, 고향에서의 자기 정체성은 ‘자유’ 가운데 있다. 억압과 속박은 객관적 실재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느낌 및 인식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런 상태에의 인식은 그것이 자기 정체성과 그것의 유지에 이질적이며 방해가 된다는 판단에 근거해 있다. 다섯째, 고향에서의 자기 정체성은 인간 실존의 귀환점이요 목표이다. 인간 존재를 실향민으로 볼 때 고향에로의 귀환에서 그의 존재가 성취되며, 또 순례자로 볼 때 순례를 끝내고 본향에 안착하는 것이 그 인생의 궁극적 목표인 것이다. 그 고향에서 인간은 자기를 재발견하며 안식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고향에서 나와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고향은 인생의 출발지이며 동시에 종착지인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고향은 실재에 있어 개인의 자기 정체성의 근원지이면서, 또 자기 동질성에 대한 물화적(物化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