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그 불교적 사상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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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운몽, 그 불교적 사상성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한국문학배경론 】
구운몽, 그 불교적 사상성에 대하여
○● 목차 ●○
Ⅰ. 서론
1. 작품의 연구 목적과 방법 및 방향
2. 기존의 연구들
Ⅱ. 본론
1. ‘구운몽’에 드러나는 삼교사상
2. 심화 - 불교적 입장에서 살펴보는 ‘구운몽’
3. 당시대는 ‘구운몽’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사대부 입장에서)
Ⅲ. 결론
요악정리 및 결론
Ⅰ. 서론
1. 작품의 연구 목적과 방법 및 방향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 내용보다도 제목에 먼저 익숙해졌던 작품, 구운몽 이재(李縡)는 《삼관기(三官記)》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하여 《구운몽》을 지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작품은 1687년(숙종13) 9월부터 이듬해 11월 사이에 작자가 선천(宣川) 유배지에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하는데, 한글작품이 한문작품보다 앞선 것인지의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구운몽》의 전래본(傳來本)은 국문사본(國文寫本) 국문간행본 한문사본 한문간행본 번역본(飜譯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국문간행본과 여러 종류의 활판본이 유포되어 왔고, 국문사본으로는 이가원(李家源) 소장본이 1955년 덕기출판사(德基出版社)에서 발행되었다. 한문간행본으로는 l803년에 출간된 목판본 6권 3책이 유포되어 왔고, 한문현토본(漢文懸吐本)이 l916년에 활판본으로 출간되었다. 그 밖에 외국어 번역본으로는 1922년에 기일(奇一:J.S.Gale)에 의해서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이름으로 영역되었고, 일역본(日譯本)도 2종이 있다. 현재 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서울대학 도서관 소장본인 4권 4책으로 된 국문필사본으로, 다른 한글본이나 한문본보다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 문체 등이 우아한 것으로 보아 김만중 시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듯하여 김만중 원작일 가능성도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성진(性眞)은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으나 8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인간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났다. 그는 소년 등과하여 하북의 삼진과 토번의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승상이 되어 위국공에 책봉되고 부마가 되었다. 그 동안 그는 8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자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영화롭게 살다가 만년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호승(胡僧)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8선녀와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하였다. 양소유의 일생은 군사적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영웅의 일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양소유는 《옥루몽(玉樓夢)》의 주인공 양창곡(楊昌曲)과 함께 이상적인 남성상이다. 양창곡이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라면, 양소유는 소극적이고 불교적 인생관을 지닌 인간형이다. 작품의 주제는 성진의 선불계(仙佛界)와 양소유가 택한 현세(現世)라는 두 세계를 놓고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도 하고, 불교적인 깨달음에 핵심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귀족소설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핵심이 무엇이든 귀족적인 사고에 입각해서 문제가 제기된다. 《구운몽》은 후대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옥루몽》 《옥련몽(玉蓮夢)》 등은 이 《구운몽》을 토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구운몽》은 저작 동기야 어떠하든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소설에 비하여 새로운 형식의 작품으로서 한국 고대소설 문학사에 있어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 대학 입시를 위해 대략의 줄거리와 주제만을 외우던 작품을 대학에 와서 꼼꼼히 읽어보고 나서의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순히 제목과 다이제스트에 실린 줄거리 정도만을 알던 필자에게 그 전체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도, 그 내용과 작품적 스케일이 깊은 인상을 준 것이다.
대학 2학년 때의 쪽지시험을 위한 ‘구운몽’ 탐독이 작품의 큰 스케일과 줄거리를 꼼꼼히 살피는 데 불과했다면, 본 논문을 쓰기 위해 읽은 ‘구운몽’은 그 내용의 사상성에 중점을 두었다. 한국 문학 배경론 시간에 수강한 불교, 유교, 도교의 삼교사상을 기초로 하여 작품을 읽는 데 중점을 두었다.
본 논문은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종교사상, 혹은 시대사상을 기초로 하여 문학작품을 읽기라는 주제를 잡았다. 즉, 문학작품을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지식을 기초로 하여 읽는 것이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김만중 본관 광산(光山). 자 중숙(重叔). 호 서포(西浦). 시호 문효(文孝). 1665년(현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 교리(校理)를 거쳐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경기 삼남(三南)의 진정(賑政)을 조사하였다. 이듬해 겸문학(兼文學) 헌납(獻納)을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작고하여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 예조참의, 1683년(숙종 9) 공조판서,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조지겸(趙持謙)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듬해 지경연사(知經筵事)로 있으면서 김수항(金壽恒)이 아들 창협(昌協)의 비위(非違)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 방환(放還)되었다. 이듬해 박진규(朴鎭圭) 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여기서 《구운몽(九雲夢)》을 집필한 뒤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