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 이론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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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리학 이론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윤리학 이론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아리스토텔레스』
이론 개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었다.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선의지였고, 중용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 절제, 정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사람이었고, 일 년 전 철학 시간에 만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실현을 위해 부단히 머리 쓴 사람이었다. 행복이 무엇이고, 선의지는 무엇이며, 또 중용은 무엇인가? 마치 뜬 구름 잡기를 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행복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뜬 구름이 조금은 내손 가까이에 와 닿은 듯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최후는 자살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전했던 말들을 되짚어 보면 그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라고 했고, 행복하고 싶으면 중용의 덕을 가지라고 했다. 폴리스는 도시국가라는 뜻으로, 작은 도시 국가 그리스는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곳이었고, 인간이 폴리스의 정치에 참여할 때 가장 인간답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알렉산더 왕이 죽은 후, 아테네에서 쫓겨난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디에도 속함 없이 혼자 방랑한 것은 그가 생각했던 이상향에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중용의 덕을 가진다는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성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조화롭게 발휘하는 중용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일치시킴으로써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용은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하루의 실천으로써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 것은 중용의 덕은 매일매일 꾸준히 계속 지속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중용의 덕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만큼 행복의 가치는 높다. 중용의 덕이 몸에 배일정도여야 행복할 수 있는데, 이는 중용의 덕은 갈등하고 고민해서 실천한다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리의 노숙자에게 빵을 주면서 빵을 줄까 말까 고민한다면 먹고 나서도 찜찜하고, 주고 나서도 쉽게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
중용의 덕은 국가 속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중용의 덕을 실천하며 국가 속에서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용을 지키며 아는 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사람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개관을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중용이다 보니, 주욱 중용에 대한 얘기만 늘어놓게 되었다. 하지만 중용을 지킴으로 인해서 행복에 다다르고, 중용의 습관화에 바탕 되는 것이 선의지이며 용기, 절제, 정의 또한 모두 어느 한쪽에 치우쳐 지지 않은 중용의 상태이니, 중용을 깨달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경험 사례
3학년 때 내가 한참 열광했던 학교 앞 문방구의 게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토큰 뽑기 기계였다. 이름은 ‘동물농장’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닭부터 시작해서 사자까지 각 동물에는 토큰이 정해져 있다. 닭은 아주 흔하게 나오므로 2개가 걸려있고, 사자는 무려 20개의 토큰이 나오도록 되어있었다. 일종의 확률게임이므로 토큰 하나를 넣고 동물버튼을 누른 후 약 30초 뒤에 바늘이 가리키는 동물과 내가 선택한 동물이 일치 했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엇갈렸을 때의 서운함이 나로 하여금 그 기계에 빠져들게 했다. 그 토큰은 문방구에서 돈 처럼 쓸수도 있었다. 나는 매우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돈을 잃지도 따지도 못했지만, 가끔 내가 하던 기계에서 동전 하나를 넣고 20개를 뽑아가는 아이가 있을 때는 살짝 배가 아프기도 했다. 내가 그 게임을 멈추게 된 것은 간단하다. 어느 날 내 책상서랍에 수북이 쌓여있던 토큰들을 엄마가 발견하셨고, 엄마께선 내 얘기를 들으신 후 당장에 갖다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는 안 할 테니 그 토큰들을 공책으로 바꿔 오겠다고 했고, 엄마와 합의 후 그 게임에는 다시 손도 대지 않았지만 가끔씩 아이들이 할 때 구경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직접 그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자 재미가 시들해 졌고,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때의 내 행동을 자제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어쨌든 타인에 의해서 쾌락으로만 치달을 수 있었던 그릇된 행동을 수정하게 되었다. 10살 된 아이에게 옳지 않은 즐거운 것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그만하라고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고 그것을 지속하게 된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소녀 가장 아이가 몇 년째 빈집털이를 하다가 걸려서 경찰서에 데려갔는데,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며 되물었다고 해서 기가 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도 자신의 행동이 나쁜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당장에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6살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었겠는지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타 지역에서 전학을 온 나는 같은 반 친구와 같은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급격히 친해졌다. 둘이서 이성 친구에 대한 얘기를 곧잘 했으며, 그러던 중 우리 둘의 마음에 정말 안 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컴퓨터 학원 보조강사 아저씨였는데, 그 당시 우리가 정말 싫어했던 일명 느끼남(느끼한 외모와 느끼한 표정 느끼한 말투를 지닌 남자)이었다. 그 선생님이 말 한마디 건넬 때마다 둘 다 몸서리를 칠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부터가 진짜 내용이다. 친구와 나는 그 느끼한 선생님을 괴롭히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학원차를 타기 전 10분 동안 옆 교실의 마우스 볼을 죄다 꺼내서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애 좀 먹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음날 학원을 갔는데 교실의 마우스 볼이 전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친구와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 날 똑같은 짓을 했고,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정도를 그러다가 그만 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그 선생님은 우리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러서 주의시키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한 짓을 원장 선생님께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온화였을까,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분명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남자 아이들과 허물없이 장난치며 지내다가도 수업이 너무 시끄럽고 산만해지면 화를 내곤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 선생님만의 우리를 가르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결국 둘 다 그 못된 짓을 그만 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주 옳은 방식은 아니었다. 우리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 우리가 과도하게 그분과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했던 것을 역력히 드러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와 친구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한 것과 결과적으로 마우스 볼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까지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불편을 초래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의 행동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에도 분명 대화의 기회는 있었는데 그 기회를 모두 막아버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다.
고등학교 1학년 만우절 날이었다. 어떻게 하면 만우절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교실에 2학년 언니들이 내려왔다. “2학년 교실 올라가보고 싶은 사람 6명만 나와.”라고 한 그 언니는 이미 명찰도 6개 준비해서 내려왔다. 나를 포함한 5명이 앞으로 나왔고, 우리는 저마다 명찰을 하나씩 받아들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그 시간은 마침 윤리시간이었다. 뒷줄에 대충 앉아서 놀다갈 요량으로 있었는데 비어있는 자리는 모두 앞자리였다. 할 수 없이 나는 맨 앞에 앉았다. 이제 들키지 않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제발 선생님이 내 얼굴을 기억하지 않고 있기를 하고만 바랬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하셨다 “이반에는 월반한 학생이 몇 명 되는 것 같애. 월반했으니 실력 테스트를 해봐야지 오늘은 월반 학생만 질문한다.” 반 언니들이 소리를 지르고는 좋아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머리를 굴리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 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선생님은 나부터 질문했다. 정말 하나도 모르는 걸 물어 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답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맞지도 않은 답을 들으면서 끄덕끄덕 하셨다. 이제 폭풍이 지나가나 했는데 그 선생님은 수업 끝나기 10분전쯤에 또 이런 말을 하셔서 우릴 놀라게 했다. “우리 월반 학생 축하기념으로 이 반 장기자랑이나 좀 보자.” 그 말을 기다리기나 한 듯 언니들이 교실 앞으로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를 띄웠다. 물론 그 후에 6명이 또 노랠 부르고 춤을 췄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선생님은 정확히 일 년 뒤에 나의 윤리 선생님이 되셨고, 그때 너였지 하시면서 매우 반가워 하셨다. 선생님의 태도에서 나는 기지를 찾을 수 있었다. 왠만한 장난은 누구나 넘어가는 만우절이었지만, 만우절에도 어김없이 장난을 허락하지 않는 선생님도 많은 학교였다. 심지어 다른 반으로 들어갔던 아이들은 한 시간 내내 설교를 들어야 하기도 했고, 내가 빠진 그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아이들이 바뀐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물론 그렇게 하신 데에는 선생님들 나름의 철학이 있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한번 봐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기어오른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쉬는 시간은 몰라도 수업시간만큼은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윤리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각날 만큼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다른 여지가 없다. 우선 한 달 만에(만우절이 4월 1일 이므로) 모든 아이들의 이름, 성격, 특성을 줄줄 꿰고 계셨고, 일 년 만에 만난 나를 기억할 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셨다. 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결코 곤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마지막 마무리를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해준 것 또한 선생님도 이 시간이 즐거웠음